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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육하고 번성하라, 그리고 번성 후에 기다리는 것들

by 윤해



2024.01.26

나고 기르고 번성하는 것은 인간이 세상에 와서 문명을 이루고 사는 근본 원리이다. 세상의 도가 자연의 도와 다를지언정 생육과 번성이라는 공통점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자연에서 본능대로 사는 짐승들과 다르게 세상이라는 문명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한 메타인지세계를 건설한 우리 인간들은 이성이라고 하는 가상세계에서 통용되는 질서의 근간이 되는 문명의 언어를 배우고 학습해야 하는 책무가 주어졌다.

그래서 자연을 사는 짐승들은 본능이라는 도구 하나로 나름의 한 생을 헤쳐나갈 수 있지만 여백을 가지고 태어나는 우리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연을 사는 짐승들의 단독 출산과 뚜렷이 구분되는 사회적 출산을 하게 되고 사회적 출산을 통해 짐승의 새끼에 비해 유약하기 짝이 없는 갓 태어난 애기는 그야말로 말 그대로 한 순간도 사랑의 기운이 없으면 생존할 수도 길러질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하에 놓인 체 자라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누군가의 피가 섞인 생물학적 탄생도 중요하지만 인간이 만든 문명세상에 적응하고 번성하기 위해 태어날 때부터 예비한 여백을 채울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하는 무엇인가라고 하는 후천적 양육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종이다.

이렇게 길러지는 종으로서의 우리 인류는 자라면서 수많은 학습에 노출되며 특히 3세 이전의 양육은 그 사람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자연에서 나서 세상에서 길러지는 생육의 영역은 이렇게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세상을 사는 우리 인간들에게 낳은 정 기른 정을 다투며 오랜 시간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서 자리 잡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처럼 끝나지 않는 결론처럼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던 시절 드라마나 에피소드, 이야기의 단골주제가 낳은 정 기른 정에 얽힌 가족 간의 비밀이었다면 생육과 번성 후에 쓰나미처럼 다가오는 인구절벽을 예감하는 저출산과 저출생의 시대에 낳은 정 기른 정에 대한 논쟁은 시대착오적인 명제가 되어버리고 아예 혼인을 하기가 어려운 비혼 만혼 세대를 길러낸 우리 기성세대의 원죄는 과연 무엇인가 되짚어 봐도 아리송하기만 하다.

문명을 도구로 세상이라는 메타인지의 세계를 전심전력을 다해 이루어낸 우리 인류 앞에 생육과 번성 이후에 닥쳐오는 번성의 종말은 자연의 일부인 지구라고 하는 거대한 행성이 단순히 돌과 암석 등 무기물로만 이루어진 무생명체가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대지의 여신 가이아처럼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의 터전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우리 인류가 만든 문명 자체가 녹색 지구가 만든 가이아 이론처럼 생명과 무생명이 조화롭게 번성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인류에 의한 제6의 대멸종이 일어날 수 있다는 녹색지구라고 하는 생육의 어머니가 인간 문명에게 보내는 준엄한 경고 아닐까?

만들고 허물고 이루고 버리는 세상의 문명도 부침을 거듭하고 노자는 ‘長育亭毒養覆(장육정독양복)’으로 우선 아이를 길러(養) 자라게(育) 하여 성장(長)시킨 다음, 나아갈 곳과 머물 곳(亭)을 분별케 하며, 무엇이 독(毒)인지 아닌지를 분별케 하며, 어떨 때 뒤집기(覆)와 업어치기를 해야 하는지 분별케 한다는 말처럼 지구라는 거대한 가이아의 품에서 번성한 우리가 長育亭毒養覆(장육정독양복)만 명심해도 녹색 지구는 낳은 정 기른 정 구별하지 않고 어머니의 자애로 우리를 감싸 삭풍이 부는 한라산 백록담에 홀로 겨울을 나는 빨간 열매 위에 덮어쓴 송이송이 핀 눈꽃처럼 자기 몸을 녹여서 생명의 빨간 열매를 기르고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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