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5
음력 11월 동짓달과 음력 12월 섣달을 합해 동지섣달 엄동설한이라 부른다.
모자간의 시절인연이 다들 각별하겠지만 동지섣달 엄동설한에 태어나신 어머니께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오뉴월 염천에 나를 출산하느라 산고의 고통과 해산의 기쁨을 함께 했을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랑에 가슴이 멍해진다.
이처럼 생일은 태어난 나를 기준으로 보면 출생이고 산고의 고통과 해산의 기쁨을 함께하는 산모의 입장에서는 출산이 되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햇빛을 보게 된 근원을 살펴보면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겹친 결과이다. 인간 태아의 탄생이 다른 포유류와 구별되는 것은 인간의 출생은 사회적 출생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주위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서 출산을 감당하기는 무척 어려운 출산이 인간의 출산이다.
세상에 나올 때 열 달간 어머니 뱃속에서 살다가 세상으로 태어나는 순간 나는 예기치 못한 난산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 어머니의 산도를 머리로 두 번 돌아 나와야 하는 인간태아의 출산경로를 벗어나 엉덩이부터 빠져나오는 볼기태위로 산도를 빠져나오느라고 산도에서 겪었을 고초도 자심했을 것이고 난산 끝에 기진맥진하여 탯줄을 끊고도 호흡의 일성이 터지지 않았다. 때 마침 사회적 출산의 조력자 숙모님이 나를 거꾸로 잡고 냅다 볼기를 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치 않았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 숙모님도 당신의 태아를 난산 끝에 출산한 후, 첫울음이 터지지 않은 애기를 그대로 눕혀 놓은 체로 호흡이 터지기를 기다린 산파의 실수로 결국 애를 잃어버린 뼈아픈 경험을 했기에 그런 경험을 하신 숙모님이 때 마침 나를 받은 인연으로 나는 세상구경을 한 셈이다.
한 사람의 탄생은 억겁의 인연이 닿아야 이루어질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은 살면서 경험하면 곧바로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세상에 취해 세상을 살다 보면 생존에 급급하고 욕심이 앞을 가리면 이 같은 것은 대수롭지 않게 치부되는 것이 현대의 일상사이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이 우리의 탄생인 것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만 해도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작용해서 부모를 만났고 부모와 이별을 했고 또 내 자식을 만났고 또 어느 순간 자식과도 이별해야 하는 회자정리 거자필반의 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엄동설한의 생일을 가진 부모님에게서 오뉴월 염천의 자식으로 태어난 유년기의 기억은 아스라하지만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은 천륜이라 부를 정도의 끈끈한 시절 인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내리사랑을 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아버지의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와는 별개로 부모와 자식 간의 시절운은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하게 부모와 자식의 운명을 이끈다. 그 운명이 시키는 대로 나아가는 것이 순천자의 도리이듯이 나도 아버지와의 시절 인연을 거역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부자간의 인연의 끈을 이었다.
바둑 3단의 포석으로 인생의 포석도 나름 철저하게 펴신 아버지였지만 포석 못지않게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생명줄이라는 반상의 중원에서 펼쳐지는 한 집 싸움의 치열함은 어찌해 볼 수 없는 불가항력
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제 부자간의 바통도 내가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이 된 지금 아버지의 지난했던 입장이 저절로 떠오르며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역시 인생의 해답은 없고 해답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원칙 앞에 서있는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