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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答은 無定地하고 인생은 생생지후(生生之厚)하다

by 윤해


2024.01.24

이래도 저래도 답은 없다는 말에 답은 해답이 되고 해답은 정해진 곳이 없으며 그래서 인생은 살면 살수록 두께를 알기 어렵고 두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생명과 생명이 서로 부딪히며 먹히고 잡아먹는 생존경쟁의 장에 놓인 우리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착각하는 부분이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운 세상만 보려고 노력하고 그 아름다운 세상이 유지되기 위해 생생지후(生生之厚)한 아니 사사지후(死死之厚)한 생과사의 깊고 두터운 자연의 섭리는 애써 외면하면서 사는 모습이 지각 위의 스몰보이 우리 인간이다.

그곳이 사람이 살았던 집터였음을 짐작케 하는 흔적 중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뒤꼍에 보이는 대나무라고 한다. 대나무는 인생과 같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죽순이 자라 위로 죽 죽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느라 빈약한 줄기와 이파리를 뒤로하고 성장하는 대나무를 보면서 선비의 대쪽 같은 기개를 상징한다며 매난국죽, 선비가 사랑하는 사군자 중에도 맨 앞에 위치하는 대나무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대쪽같이 좁고 높게 성장하는 대나무가 비바람과 폭풍우에 부러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 이유는 대나무 밑에 있는 대나무 뿌리에 있다. 대나무는 결코 홀로 서있지 않다. 땅밑으로 서로 연결되어 합해 있는 것이다. 대나무는 이미 지구상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으면 안 되고 땅밑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옆에 있는 동료 대나무와 엮이고 합쳐야지만 살아갈 수 있다는 생존의 답(答)을 이미 체득하여 답이 답이 된 것이다.

그러면 답은 알겠는데 해답은 또 무엇인가? 정말 힘들게 생존하기 위해 합쳤는데 이제 또 답을 해체하는 해답을 하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고?
어쩌면 그래서 산다는 것은 반전과 역설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생존하기 위해 답을 찾아 합쳤다면 이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 합쳤던 답에 안주하지 말고 기존의 답을 과감히 끊고 새로운 답 해답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곳이 우리가 사는 초록별 지구이다

한 생을 살아가면서 답을 찾고 찾은 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여정, 즉 해답을 통해 성장하는 지구의 생생지후(生生之厚)한 섭리를 우리의 초록별 지구는 대나무를 통해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우리 인간이 세상 속에서 문명을 이루고 살고 죽으면서 생생지후(生生之厚)한 삶을 살고 또 그만큼 사사지후(死死之厚)한 경험을 통해 정지(定地)하는 답을 통해 생존하고 무정지(無定地)한 해답을 통해 성장하는 생존과 성장 그리고 죽음이 반복되는 곳이 생생지후(生生之厚)하고 사사지후(死死之厚)한 우리의 초록별 지구의 섭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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