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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고 존재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by 윤해



2024.01.30

1990년 영화화된 이문열의 장편 연애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영화를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브랭땅 백화점 인근 영화관에서 본 기억이 난다. 스토리는 희미하지만 그 당시 청춘의 심벌 손창민과 이제는 고인이 된 강수연의 풋풋하면서도 욕망과 시대사이를 부조화스럽게 살 수밖에 없었던 청춘남녀의 비극적 종말을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 이문열 특유의 글 전개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나가 나라가 되고 나라끼리 서로 먹고 먹히는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전쟁은 늘 역사의 스펙터클한 전쟁사로 기록되고 있지만 나나 나라가 먹고살면서 더 잘살고자 하는 욕망의 분출이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는 역사가 평화로운 시절 우리가 목도하는 경제사이다.

경제는 경제적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효율이며 도랑치고 가재 잡는 일거양득의 게임이다. 그러나 해가 가고 날이 갈수록 인간의 욕망이 비대화 지면서 극강의 가성비를 추구하고 이 극강의 가성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삼라만상을 오로지 욕망의 도구로만 바라보고 달려온 길이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다.

문명은 패러다임의 시대사적 지층이다. 그때 그 시절 할 수 있는 한 전력을 투입해 달려가는 인간군상들이 탄 욕망이라는 전차는 필요한 것을 발명한다는 창의적인 발명가 그리고 탐험가 종교인을 넘어 만사가 극강의 가성비로 만귀일법하는 세상을 기어이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자연에서 빠져나온 인간이 처음에는 한벌 옷 한 끼 밥 그리고 머리를 눕히고 비바람을 피해줄 소박한 잠자리가 필요했다가 점점 더 욕망이 비대화되면서 의식주 중에서 더 좋고 고급스러우며 더 크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다가 급기야 필수재가 아닌 희소재에 관심을 가지고 많이 먹으면 병이 나는 식품첨가물과 같은 향신료, 커피, 설탕 같은 기호식품에 목을 매는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모든 약은 독이고 독을 여하이 제어하는가가 변독위약의 비결이듯이 존재 자체가 이유인 우리의 문명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어찌해 볼 도리는 없지만 한 생을 주체적으로 살려면 극강의 가성비를 도구화하여 나와 나라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시스템 만으로는 지속가능할 수가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류이다.

해가 뜨면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극강의 가성비를 바탕으로 비대해진 욕망을 실현시키려고 하지만 해가 지면 한심하게 추락하고 있는 자기 내면의 모습에서 두 심(양심), 세 심(세심)이라는 다른 마음의 날개를 달고나와 극강의 가성비로 피폐해지고 너덜너덜해져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신을 구하여 다시금 힘을 내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이 우리가 한 생을 사는 방식이자 섭리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한반도에서 서쪽 끝 티르키에까지 몽골리안 반점을 가진 동양인에 의한 동점서세의 길을 전쟁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 스텝지역을 달리는 몽골기마병의 말발굽으로 열었다면 동양의 하이테크 기술로 만든 비단이 오고 가는 실크로드는 극강의 가성비가 욕망을 비대화시킨 상인이 개척한 교역의 길인 것이다.

실크로드가 막히자 대항해 시대를 연 유럽의 고육책이 문명사의 대전환을 가져온 서세동점의 단초가 되고 삼각무역, 즉 영국의 총과 화포 아프리카의 노예 신대륙의 물품을 교환하고 거래하는 무역에 의한 극강의 가성비를 통해 기틀을 잡은 대항해 시대의 질서가 현대의 항행의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미국에 의한 세계 패권질서로서 완성된 것이다.

이처럼 수백 년간 공고히 굳어진 세계패권질서도 시간의 피로파괴는 비껴가기 어렵다. 이제 항행의 자유는 점차 축소될 것이고 세계는 네트워크라고 하는 새로운 인터넷의 바다에 모이고 있다.

서세동점의 대항해 시대가 그래왔듯이 욕망으로 가득 찬 선주로 대표되는 자본가와 선장인 경영자 선원인 노동자가 뒤섞여서 욕망의 비대화를 실현시킬 범선을 타고 해적이 득실대는 바다로 나갔다면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인터넷의 바다에서는 나라보다는 나 하나하나의 개인의 욕망이 덩어리가 아닌 분절화되고 하이브리드화 된 형태로 떠다닐 것이며 대항해 시대에서 사략선을 가장한 해적선이 출몰하던 지구의 바다는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인터넷 바다에서 데이터와 가상자산을 탈취하고자 밤을 새우는 해커들로 어수선할 것이다.

방식과 기술은 바뀌어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듯이 존재에는 이유가 있고 결국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지만 살아남은 자가 가는 길이 문명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켜 인류를 추락시키는 길일지 아니면 인류에게 날개를 달아 인류의 존재 자체가 이유인 길로 우리를 인도할지 지금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 세심하게 결심하는 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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