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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어(活語)가 활구(活句)가 되어 활인(活人)하는 세상

by 윤해


2024.01.16


말씀이 모이면 언어가 되고 언어를 글로 기록하면 구절이 된다. 그리하여 구구절절 옳은 말씀을 모아놓은 것이 고전이 되고 경전이라 부르며 세대를 이어 신줏단지처럼 보존하고 계승하고자 힘써 노력한다.

말과 글을 가지고 세상을 환하게 밝힌다는 문명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세상에 태어나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주는 좋은 글귀에 반해 인생관과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는 경우가 인생을 살면서 허다하게 목격된다.


말을 섞고 글을 주고받는다는 의미의 무게는 이루 헤아리기가 어렵다.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우리의 정신세계는 우리 유전자 조합만큼이나 다채롭기 짝이 없으며 고정불변된 무엇인가가 아니라 우리 몸을 구성하는 최소단위 세포 속의 원자핵과 원자 주위를 도는 전자의 떨리고 불확실한 궤도처럼 정해진 것 없이 생멸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집합체와 같다.


개성으로 똘똘 뭉친 정신세계를 가진 우리가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접하는 생소한 환경에서 우리는 백지 같은 우리의 정신에 세상의 고정관념을 끊임없이 집어넣고 그것을 교육이라는 의미로 미화하고 강화한다.


미화되고 강화되는 교육의 도구는 대부분 언어, 즉 말과 글이다. 학교에 처음 입학하여 책을 받고 수업을 받으며 걸상에 앉고 책상을 안고 10년 공부를 하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고등학교 졸업을 한다. 그 10년의 세월 동안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이 말을 하고 글을 써며 책을 읽고 누군가가 정해 놓은 정답이라는 것을 찾아가는 시험에 든다.


형설지공에 비유되는 10년간의 공부에서 우리는 우리가 타고난 정신세계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로지 좋은 자리, 편안하고 안락하고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미래가 보장되는 직업에 들어가기 위해 출구 없는 생존경쟁의 세상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배워 왔던 것이 죽은 말로 된 죽은 글인지 살아 숨 쉬는 말로 이루어진 생생한 글인지에 따라 우리는 매일매일 성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 하루하루 죽어가는 인간이 되는 것인가가 판명된다.


이처럼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구(死句)와 활구(活句)의 차이를 알아야 우리가 성장할지 퇴보될지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내 나름대로 활구( 活句)와 사구(死句)를 정의해 보면 먼저 활구는 글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언어인데 반하여 사구(死句)는 주로 책이나 글로 표현되며 활구는 생명력 있는 자연언어이며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변화한다는 특징이 있으며 사구는 인간의 인식체계 중에서도 주로 눈과 귀를 자극하여 세상조직 속에서 살기에 적합하고 편한 고정관념을 인간의 뇌에 심어주며 활구(活句)는 주로 우리의 육체정보에 기록되고 사구(死句)는 책이나 경전 마이크로 칩과 같은 사물에 저장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활어(活語)가 모이면 활구(活句)가 되고 활구(活句)는 사람 속으로 해인처럼 아로새겨져 활인(活人) 하며 사람으로서 계속 성장하는 원천이 되고 사어(死語)를 생각 없이 주입하면 사구(死句)가 되고 사구(死句)라는 고정관념에 빠져들면 그때부터 우리는 사인(死人)하게 되고 우리의 정신은 쇠락하고 퇴보하며 생명의 길이 아닌 사망의 골짜기에서 헤매게 되어 있다.


세상을 살면서 활어(活語)와 사어(死語)만 분별할 수 있어도 우리의 한 생은 개성과 성취로 나름 보람차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늘 사구(死句)는 미사여구와 호의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화려한 언변 미사여구는 정신줄을 잡고 있어도 우리를 현혹한다.


그러나 우리가 부여잡고 있어야 되는 한 가지는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어(死語)와 사구(死句)를 외우고 살았지만 우리의 본모습은 온 우주의 진리가 살아 숨 쉬는 육체정보라고 하는 활어(活語)를 바탕으로 활구(活句)를 써 내려가고 그 활구(活句)를 가지고 활인( 活人)한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자유롭고 다채로운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세상 속의 인간만이 아니라 생명줄을 타고 흐르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활인(活人)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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