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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가는데 실 따라가듯 맘 가는데 몸 따라간다

by 윤해



2024.01.19

마음이라는 것의 실체를 알고자 마음공부, 종교 귀의, 경전 탐구를 너머 세상 속에서 수많은 인간과 관계를 맺고 관계를 끊으면서 희로애락 오욕칠정을 몸소 경험해 봐도 마음이라는 것은 이른 봄 들판에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하기만 하다.

마음씨가 곱다. 심보가 사납다. 심성이 곱다. 심술보가 장난이 아니다. 마음에 관련된 갖가지 단어가 긍정과 부정의 모습을 한 체 우리 주위를 맴돌면서 마음이라는 회오리바람이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나와 너를 감싸 안으면서 따뜻함과 서늘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누가 마음의 실체를 본 사람이 있었을까? 누가 마음의 소리를 들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소위 말하는 듣보잡의 전형인 마음을 가지고 먹지도 잡지도 떠나보내지도 못하며 한 세상 내 마음 나도 몰라하면서 심각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마음을 가진 현대인의 초상이다.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마음이 발심되는 곳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마음은 발심이 일어나는 초발심이 가장 중요하고 이 초발심을 시작으로 눈덩이처럼 살을 붙이면서 눈사람의 형체를 만들어 실체를 드러내기도 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눈 녹듯이 녹기도 하면서 마음을 잡고 마음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것이다.

어쩌면 마음은 마음의 장기 심장에서 불꽃을 튀기듯이 발원하여 피를 타고 마음이 거하는 40조 개도 넘는 세포 곳곳을 채우고 흐르다가 때 묻고 지친 마음이 다시금 정맥을 타고 문맥을 넘어 간장에 들어가서 사랑의 마음을 담은 애간장을 태우고난 뒤 심장으로 흘러 들어가 깨끗한 마음으로 탈바꿈되는 살아 있는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진행되는 일시무시한 일련의 생체활동을 일컫는 말은 아닐지 상상해 본다.

"마음을 잡는 자 세상을 잡는다"라는 말이 칭기즈칸 루트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 널리 회자된다. 팍스로마나가 서양적 시각의 태평성대였다면 팍스 몽골리카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칭기즈칸의 대제국 몽골 기마군단의 말발굽이 이루어낸 최초의 세계화를 상징하는 말이다. 잔인한 무력을 가지고 전장을 누비던 칭기즈칸은 어떤 마음을 잡았기에 세상을 잡았을까? 마음을 잡기 위해 세상을 떠나 고요한 산사를 찾아 좌정하고 좌법 하며 명경 같은 마음을 들여다 보고 마음을 잡는 고승들의 마음공부와는 어떻게 다른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보이지 않는 마음과 보이는 몸을 가지고 산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하면 마음은 없는 것이요 보이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극히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몸보다 마음만이 남는다.

이러한 마음과 몸의 갈등 속에서 우리는 한 세상을 고민하며 사는 것이다. 보이는 몸을 위해 살 것인지 보이지 않는 마음을 위해 살 것인지는 사람으로서 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한번쯤 고민해야 할 인생의 화두이다. 각자 생각한 바가 있어 몸이 우선인 인생관으로 사는 것이 최고다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그래도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이 최고다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

누가 더 알찬 인생을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잡지 않고 몸을 함부로 굴리면 그 결과가 얼마나 허망하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몸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산다.

그러나 몸은 세월에 장사가 없음을 유기체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유기체의 한계에 갇힌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즉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인 것이다.

유기체인 몸의 종말 후에도 남아서 영원히 존재하는 마음이라는 실체에 눈을 뜰 때 가벼운 마음으로 누구를 위해 한 생 아니 영생을 살지는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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