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뿌리를 땅속에 박고 사는 식물과 달리 땅에 지접 하지 못하고 지각 위를 어슬렁거리며 이동하는 동물들은 식물 입장에서는 거의 진기명기 수준의 묘기로 비칠 것 같다.
영장류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동물은 그래도 머리 몸통 꼬리가 땅을 보면서 대체로 사족보행을 통해 이동하는 비교적 균형을 유지하며 이동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이족보행, 즉 직립보행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결정적 사건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직립보행으로 이동에 관여했던 앞발이 손으로 바뀌고 오로지 뒷발로만 지구를 떠받치게 된 인간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진화의 마지막 가지를 완성하고 보행에서 해방된 앞발 아니 양손으로 도구를 움켜잡았으며 이 양손의 능력향상은 그대로 뇌로 전달되어 손과 뇌의 하모니를 통한 공진화라고 하는 진화의 특이점을 넘어 기어이 다른 모든 동물을 제치고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만족하지 못한 우리 인류는 정교한 도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먹이 사냥의 수단으로 발전시킨 외마디를 더욱더 갈고닦아 정교한 언어를 만들었고 이 창조된 언어는 문명을 창조했다. 이 문명이야 말로 지혜자로서 호모사피엔스를 완성한 구동체라 불러야 할 유일한 그것이다.
문명사회는 우리가 지나온 험난한 진화의 여정에 비하면 어쩌면 낮잠을 자면서 꾸는 짧고 강렬한 그야말로 일장춘몽 같은 것 아닐까? 깨고 나면 헛되고 헛되지만 꿈꾸는 동안은 얼마나 달콤한지 이루 형언하기가 힘들 정도다.
꿈에서 깰 때는 대게 한 손을 허우적거린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물속에서 허우적 대다가 더 깊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비몽사몽 간 허우적 대다가 삐끗 직립보행 하고 있던 발이 지구를 들고 차면 우리는 그동안 온갖 진기명기를 넘어 묘기 수준급 지구 이동의 종지부를 찍고 꽈당 소리를 내며 첫돌 즈음 땅을 짚고 일어난 이후 처음으로 안정된 자세로 지각과 만나면서 비로소 문명세상의 불빛만 보던 눈으로 번쩍 섬광이 일어나는 별을 여러 개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문명 세상에서의 우리 삶의 종지부를 이 낙상 하나로 마감하고 우리는 기나긴 진화의 역순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병석에 눕는 것이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더 이상 직립보행이 불가능 해진 인간은 누군가의 간병 없이는 먹고 자고 싸는 기본적 욕구도 해결하지 못하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거꾸로 가듯이 강보에 싸인 애기가 되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다.
노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도 노인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여기저기 심심찮게 낙상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직립보행의 역설이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시대이다. 삼천갑자 동방삭 같이 굴러 굴러 삼천 년을 사는 재주는 없어도 피할 수 없는 낙상을 슬기롭게 하려면 동방삭의 낙법과 유연한 몸놀림도 벤치마킹 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피할 수 없는 낙상이 다가올 때 더욱더 조심하고 비록 나이가 노인이라도 평소에 햇볕 쬐고 칼슘 먹는 자랑 말고 카페인 음료를 장비가 술 먹던 모습처럼 마신다면 새는 칼슘이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겠는가?
칼슘 빠진 뼈에 구멍이 알게 모르게 성성해지면 순식간에 우리는 드러누워 와병에 들어 긴병의 효자도 없을뿐더러 있다 해도 한 자세로 누워 있는 부모를 잠도 자지 않고 2시간마다 돌려 눕히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고 잠시만 방심하면 중력이 와상 환자의 엉치뼈를 누르고 그 뼈가 살을 파서 와상 환자의 마지막 가는 길에 회복키 어려운 길동무, 욕창과 마주한다.
단순히 한번 삐끗 넘어졌을 뿐인데 낙상은 이처럼 심대한 결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처럼 직립보행의 기적의 끝은 낙상으로 마감되고 우리는 저승사자와 길동무하며 이승과 이별하는 것이다.
구구팔팔 이삼사가 진정한 우리의 원이라면 평소 뼈대 있는 가문의 후예답게 세상의 음료에 너무 열광치 말고 낮에는 태양보고 밤에는 숙면하면서 하루하루 직립보행 자주 하고 즐겁게 산다면 구구팔팔 이삼사도 헛된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