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발목이 잡혀 현재를 못살고 미래를 닫는다
2024.04.30
과거에 발목이 잡힌다는 말이 무엇인가? 과거라는 개념은 우리 인간 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개념일까?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에게는 정말 과거라는 인식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인간이 공간을 살면서 시간을 만들어낸 일련의 행위를 우리는 문명이라 부른다. 말과 글로써 세상을 밝히는 문명은 태생적으로 지나온 과거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차 있다. 그 기록은 한마디로 잊지 말자는 강력한 명령으로 일관되어 있다. 기록 자체의 속성이 휘발되는 망각의 속도를 기억이 따라잡기 위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글로 기록한 기억은 기록한 자의 감정에 지배받기 십상이다. 똑같은 상황을 보고도 그림을 그리듯 개별적으로 과거를 기록하므로 과거사에 대한 합의야말로 나나 나라나 모두 힘들어하고 오류를 바로잡기는 연목구어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며 동시에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니 그래도 이해를 하지만 개인의 미시사 마저도 왜곡에 왜곡을 더한 덧칠로 분칠 됨은 무슨 연유인고? 과거에는 과거가 집단의 전유물로 자리 잡았다. 부족사회에서는 나이 든 할머니가 들려주던 부족의 과거 행적이 입과 입을 통해 구술되어 하나의 신화로 자리 잡았고, 국가의 형태를 구축한 왕조국가에서는 주로 지배층의 정당성을 꾀하는 도구로서 과거를 소환하여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써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왕조에서 민주사회가 된 지금 이제 과거사는 더 이상 지배층의 전유물이 아닌 개개인의 메타포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더 이상 집단 이데올로기라는 20세기의 낡은 과거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제한적이었던 과거의 우리들이 오히려 현재에 몰입하며 일상이 최상인 현재에 삼매 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면,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의 우리는 삼매 할 현재를 잃어버리고, 온통 세상을 도배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흘러간 과거가 발목을 잡아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도 닫히는 역설적 세상과 마주해 있다.
과거에 발목이 잡힌 대표적 나라가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 아닐까? 그 원인은 무엇일까?
과거에 대한 이견의 근본적 원인을 하나 꼽는다면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하는 과거사에 대한 현장감의 결여가 초래하는 과거사 왜곡이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현장감 왜곡의 가장 큰 아이러니가 서울 가본 사람과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싸우면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다는 말에 현장감의 역설이 있는 것이다.
고난을 당해 현장에 있어 보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도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기도 묘연함을 느끼고 주저하게 된다. 현장을 안 가본 사람의 특징은 머뭇거림이 없다. 마치 도상 작전계획을 짜고 움직이듯이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당위성이 차고 넘친다. 생각과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현장의 시간을 주저 없이 사뿐히 무시하며 과거를 발목 잡아 끊임없이 시비를 일삼는 한 무리의 인간들이 현재를 지우고 미래를 닫아 버린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달콤하고 깔끔한 말이 개념을 만들고 이 개념이 이념을 만들어 전 국민을 과거에 발목 잡히게 하여 일상을 못살게 하는 가짜뉴스라는 흘러간 과거는 우리 공동체에 분란을 일으켜 어부지리만 일으킬 공산이 크다.
지금부터라도 옥석을 가리는 혜안으로 과거에 발목 잡히는 일이 없이 현재를 살고 미래도 여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