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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May 01. 2024

천하개지(天下皆知), 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


2024.05.01

 천하는 이미 알고 있다. 자신보다 한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만물은 그 존재 자체로 존재의 이유가 있고 가치는 헤아릴 수가 없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착각을 다반사로 하고 산다. 일단 익숙하고 흔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무시한다. 어쩌면 그 무시당하는 그것이 없으면 살 수가 없음에도 늘 그 자리에 그것이 묵묵히 우리를 지켜주리라는 근거 없는 착각 때문에 궁극적인 오판 하나로 재앙에 직면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무엇일까? 멀리 갈 것도 없이 노자 2강에 등장하는 천하가 바로 그것이다. 천하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미 다 안다고 하는 것인가? 생김새를 보아하니 광대무변이요 다재다능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아니 억만 번을 고쳐 죽어도 모든 것을 포용하고 내려다보는 알파 이자 오메가이다.  이 만능의 천하가 오로지 알고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이 그토록 알고 싶어 하던 미추도 선악도 간섭도 대우도 소유도 성공도 아닌 한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하다는 천하의 울림 하나이지 않을까?

전지전능한 천하가 만물을 내어 길러 생육하고 번성시킨 한 생명은 수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천하의 걸작품이다. 만물들은 각자 소임과 역할이 있어 저마다 자기가 최고임을 뽐내지만 만물을 내어놓는 천하의 입장에서는 어느 하나 버릴 것도 취할 것도 없는 자신, 즉 천하보다 죄다 귀한 한 생명일 뿐이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세상에 사는 우리는 모두 한마디를 거들고 있다. 무엇이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버리게 했을까? 아니 다시 한번 묻고 싶다 그 젊은이들은 과연 자기의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까? 이리저리 물어봐도 어째 한마디로 대답할 수 없는 묵직한 주제이다.

세상의 재난을 연구한 사람들이 재난은 재난의 방아쇠가 당겨지기 전에 최소한 수십 번의 전조현상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데에 대체로 동의한다. 즉 대형재난은 이 수십 번의 기회를 깡그리 무시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은 도외시 한 체 천하가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는 무심한 재물에 온 마음이 뺏겨 저지르는 철없는 행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미쳐 피워보지도 못하고 진 꽃봉오리 같은 은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의 배후에 똬리를 틀고 자리 잡은 세상 조직들과 현장에서 마주치는 기성세대들의 맹목적인 이기심과 그칠 줄 모르는 욕심 사이에  낀 세대로서  젊은이들의 무력감은 이루 말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갑질마저도 자리를 옮겨 가면서 요동친다. 그 갑질에 갑을이 바뀐 당사자들의 억울함은 그 갑질의 강도가 큰 몫을 차지한다. 그 좀 대강해라라고 하는 말이 이경우에 해당이 될까? 우리 사회가 어느 틈엔가 최대이익추구자로 가득 찬 세상이 되어 어느 누구 하나 참는 사람 없이 할 수 있는 한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었다.


 불과 십 년 내에 벌어진 우리 사회가 여백을 말살하고 권력투쟁에 골몰한 사이 그만하면 되었다는 만족추구자는 씨가 말랐고  저마다 그 개인이나 조직이 할 수 있는 한 최대치를 빼먹으려는 슈퍼갑질 사회가 어느 사이에 아예 자리를 잡은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까?

이러한 세상에 사는 슬기로운 생각은 노자의 말씀대로 천하는 이미 우리가 한 생명으로서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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