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문동 나리의 출세와 두문동재 하늘나리의 두문불출
2024.04.28
역성혁명으로 회자되는 여말선초의 격동기는 500년이나 지속된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는 내전이었다. 위화도 회군이라는 동아시아 질서를 결정 지은 결단을 통해 고려의 숨통을 끊고 조선을 개창한 이성계를 피해 그 당시 인텔리 계층을 대표하던 고려충신 72인은 끝내 새 왕조에 출사치 않고 황해도 개풍군 광덕산 서쪽 골짜기에 숨어들어 세상으로부터 빠져나와 이방원에 의해 세상을 하직했다.
그렇게 두문불출(杜門不出)하여 화마가 들이닥쳐도 나오지 않고 절개를 지켰던 고려충신들의 넋이 광덕산에서부터 하늘 높이 나르고 날라 때 마침 불어온 높새바람을 타고 날아가다가 강원도 태백준령에 막혀 두문동 선비들의 넋이 꽃이 되어 내려앉은 고개에 사뿐히 자리 잡아 나도 없고 나라도 없고 세상에서 마저 빠져나와 어느 야트막한 양지 마른 언덕에 옹기종기 모인 선비 나리들이 이제는 다시는 속세로 나가지 말고 태백준령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한 뼘 하늘만 바라보는 나리가 되고자 하늘나리가 되었다는 두문동재 이야기가 나만의 상상일까 궁금하네
검은 황금이라는 석탄은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석탄을 기반으로 한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인류는 농업혁명과 함께 한 가축과 농노의 노동력에 의존한 재화의 생산에 마침표를 찍고 증기기관으로 상징되는 기계문명과 손잡고 나아간 문명의 특이점을 기어코 넘어선 것이다.
지금의 현대문명을 촉발시킨 검은 황금, 석탄은 그 이후 발견된 석유화학 시대의 마중물이자 동반자로서 문명의 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아 국제정세가 불안해질 때마다 가슴을 졸이는 우리나라가 그래도 한구석 믿는 데가 우리나라 산업의 마중물 역할을 했던 검은 황금, 석탄이다.
두문동재에 피어 있는 기품 있는 하늘나리 밑으로 지하 수백 미터 태백 석탄 광산의 막장 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가족을 부양하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어느 이름 모를 광부의 삶과 속세를 떠나 세상에서 빠져나와 하늘만 바라보는 하늘나리와 같은 삶을 살다 간 두문동 선비나리들의 두문불출한 삶이 묘한 대비로서 내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