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2.19
현대는 과로가 일상화된 피로사회라고 한다. 피로를 방치하면 피로파괴로 심신이 방전되면서 갈등이 폭발하여 공동체가 위기에 처한다.
수렵채집 시대를 거쳐 농업혁명을 통해 정착하면서 우리 인류의 노동부하(勞動負荷)는 시작되었고 농업혁명이 잉여재화를 만들어 내면서 잉여재화가 썩지 않는 화폐로 탈 바꿈 되면서부터 인류는 이제 쉬려야 쉴 수 없는 상황, 즉 본격적이고도 만성적인 피로상황으로 내몰렸다.
수렵채집시대에 사냥을 하거나 나물을 채집하거나 서로를 인정하고 돕는 평등을 기반으로 한 역할분담정도의 원시공산주의 공동체가 농업혁명을 통해 가축을 길들이고 폭발적인 생산량 증대를 가져오면서 화폐경제를 매개로 하는 초기 자본주의 사회로 이동하는 와중에서 인류는 계급을 만들었고 가부장적 계급사회는 지배와 피지배계급을 세분화하는 피라미드 조직을 완성하였다. 완성된 피라미드 조직은 누가 사회의 노동을 부담하느냐의 바로미터가 되어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누어지고 이러한 서로 간의 첨예한 갈등의 반복이 인류의 역사다.
18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어느 정도 대체한 시점과 동시에 발생한 축구는 우리 인류에게 잃어버린 노동의 기억, 피로의 기억을 짧은 시간에 되살려 주면서 수렵채집시절에 사냥감을 쫓아가는 추격의 짜릿함과 더불어 11명이 원팀이 되어 서로 협력하여 상대편 11명을 제치고 기어이 골대안으로 공을 차서 넣는 세리머니는 농업혁명 이후 제국을 만들어 정복전쟁에서 승리하는 쾌감까지도 우리에게 선사했다.
따라서 현대 우리 인류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묘미와 의미를 선사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축구는 우리 인류가 걸어온 족적의 축소판이며 정복전쟁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전쟁에서 병법이 중요하듯이 축구에서 전술은 절대적이다. 힘이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를 골탕먹이며 힘을 소진시켜 궁극적 승리를 쟁취하듯이 그라운드 안에서는 얼마든지 역전승과 극장골이 작렬하여 승부를 뒤집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한 사람의 인생도 힘을 어떻게 적절히 배분하여 쓸 때 쓰고 쉴 때 쉬는 전략을 통해 피로 때문에 완전히 힘이 소진되는 방전만은 막는 현명한 전략이 있어야 함에도 전쟁과 같은 국가대항전 축구에서 무전략과 방임으로 선수들을 사지로 내몬 감독 나아가서 축구협회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같은 혼군의 처신을 생생하게 재연했다.
전장에서 개념 없는 지휘관이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병사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처럼 공식적인 의결기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감독을 선임한 축구협회 회장의 무능이 어찌 보면 태극전사들을 사지로 내몰고 혼신의 힘을 다한 선수들끼리 잘해보려고 하는 마음이 모이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찟어발겨진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임진왜란의 치욕을 징비록이라는 글로 승화한 유성룡처럼, 혼군이 명장을 죽이려 할 때 적이 무서워하는 사람은 살려야 한다고 1298자 상소, '논구이순신차(論救李舜臣箚)’를 올린 노 대신 정탁이 있어 명장을 구했듯이 우리는 차세대 축구 명장의 자질을 가진 젊은 피를 앞서서 매장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은 늘 실수를 반복한다. 다만 한 번의 실수를 누가 전화위복하느냐가 공동체의 성패를 가른다. 투캅스로 유명한 박중훈이 열연한 '천군'이라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청년 이순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계속된 실패로 의기소침한 패배자의 모습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간 남북한 군인들의 격려로 명장으로 재탄생한 스토리가 비록 픽션일지라도 구국의 명장은 결국 그 명장을 키워낸 공동체의 역량이며 결국 그 역량이 모여 공동체의 생사가 결정되는 역사의 섭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유효하다.
회장과 감독이라는 한국축구의 암적인 환부를 도려내고 이제 축구계에서 완성된 명장의 반열에 오른 캡틴의 포용력에 더해 미완의 철부지 슛돌이가 환골탈태하여 깊은 반성과 사과를 하고 명장으로 거듭난다면 음지에서 팀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태극전사들이 의병이 되고, 이 히든 히어로들이 위기에 굴하지 않고 전략적으로 전진한다면 우리 공동체는 다시 한번 단합되어 아시안 컵을 넘어 월드컵을 노리는 도전도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라는 부푼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