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자박(自繩自縛),자승자치(自勝自治)

by 윤해


2024.02.20


스스로 그러한 자연에서 태어난 우리, 본능과 이성의 혼란 속에서 자연을 극복해야 자연의 일부가 되어 태어날 수 있듯이 세상이라는 환경을 만나 스스로 세상의 시련을 이기는 자승(自勝)을 하지 못하면 세상은 생존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이성의 명을 받고 우리는 지구에 와서 살고 있다.


즉 본능이라는 자연이 주는 숙명의 명과 이성이라는 세상이 주는 운명의 명을 함께 받고 살면서도 우선은 세상이 주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하루하루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본능을 억제하며 차가운 이성으로 스스로 그러함에 도전하여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자승(自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


저마다 가지고 태어난 본능의 달란트(talent)를 가지고 운명이 이끄는 이성의 목표점을 찾아 생존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도정에는 반드시 자기를 이기고 자연의 본능을 극복하는 자승(自勝)의 단계를 피할 수없다. 치열한 세상의 생존경쟁 속에서 세상이 개개인을 바라보는 기준은 누가 자승(自勝)을 잘했는가로 평가하고 보상하는 시스템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자승(自勝)을 통해 운명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다 보면 필연코 만나는 지점이 도와 덕의 희비쌍곡선이다. 어쩌면 도와 덕 나아가 업은 자승을 통해 생존하고 행운을 만나 환호하며 불행을 만나 탄식하는 세상 속의 인간을 주저앉히기도 하고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 척도이며 잣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이러한 세상의 기준을 당당히 통과하여 누구나 선망하는 생존의 지점에 도달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다시 말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거미줄같이 촘촘하고 질긴 도와 덕 그리고 업으로 쌓아 올린 인과응보의 인연법이다.


이 인연에 따라 재승박덕(才勝薄德)의 삶을 산 인간에게는 자박(自縛)이라는 운명이 주어지면서 업장소멸의 기회를 주는 것이고 주어진 자승(自勝)의 기회를 자치(自治)하여 업이 아닌 도와 덕을 제대로 세우는 사람에게는 자치(自治)의 운명을 주어 덕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자연에서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숙명이자 운명이다.


그러므로 자승(自勝)을 한 다음 자박(自縛)이 되어 스스로를 꽁꽁 묶어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이나 자승(自勝) 후에 자치(自治)를 하여 스스로를 세상을 밝히고 도움이 되는 존재로 우뚝 세우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의 결과 어떤 이는 자승(自勝)이라는 조그마한 성취에 도취되어 그 자신이 이룬 성취가 누군가의 덕택과 덕분으로 여기까지 온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반복하다가 자박(自縛)의 지경에 빠지고 누군가는 자승의 결과를 겸손하게 받아들여 몸을 낮추고 말을 줄이며 더욱더 자기를 돌아보고 도를 통해 덕을 쌓으며 자승(自勝)하느라 돌아보지 못해 혹여라도 자신 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끼친 업을 쌓은 적은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해야 업장소멸을 할 수 있는지 삼가고 돌아보는 자치(自治)를 통해 덕에 이르는 길을 찾기도 한다.


상덕부덕(上德不德)이라는 <노자> 38장에 나오는 말. 최고의 덕은 있는 듯 없는 듯 스스로 드러내지 않아 덕이 있고, 최하의 덕은 오지랖을 떨어 억지로 무엇을 드러내 덕이 없다는 말이나 <천자문> 제27구 ‘德建名立(덕건명립), 形端表正(형단표정)’, “덕을 세우면 이름이 날리고, 자세(形)가 바르면 표정이 단아해진다.”는 가르침과 같이 스스로를 이기고난 후에 우리는 우리 마음을 잘 다스려 자치(自治)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묶어버리는 어이없는 재승박덕(才勝薄德)의 어리석음에서 헤어나갈 수 없음을 경고하고 아울러 자승(自勝) 후에 덕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자치(自治)에 있음을 알아차려 자승자박(自繩自縛)을 넘어 자승자치(自勝自治)의 한 생을 사는 것이 참된 도에 들고 덕을 쌓는 일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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