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정론(其無正論) 기유정론(其有正論)

by 윤해



2024.02.21

노자가 제시한 기무정론(其無正論)을 "바름(正)은 아예 없다. 바름은 인간 본성에 기인한 품성이 아니라 어울려 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논리이니 이 또한 실체가 없도다. 그러니 바름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음을 깨달아라."로 해석하는 것도 멋진 해석이다.

노자는 늘 무(無)라는 글자를 즐겨 쓰면서 기존 질서에 순응된 사상이나 생각들을 비틀어 보고 세상에 순치된 인간 조직에 일침을 가하면서 반전과 역설로써 사람의 무늬를 찾으려고 한 줄 글을 보탠 위대한 사상가다.

바름이 없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기무정론(其無正論)의 잣구 그대로의 해석은 맞는 것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여기서도 무(無)의 개념이 중요하다 무(無)를 없다고 해석하면 이면과 섭리를 내다보는 노자의 철학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고 허망하게 결론내고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맹추(盲追)가 된 느낌이다.

우리가 사는 한 생은 뿌린 대로 거두는 우주법과 그때그때 당면한 문제를 헤쳐나가는 세상법이 함께 혼재되어 마구 섞여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먼저 자각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속가능한 삶과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는 찰나적 삶이 충돌하고 있는 곳이 인간이 만든 세상이다. 보인다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닌 우주법과 세상법이 치열하게 각축하다가 결국 세상을 사는 우리는 세상법에 따라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곳이 지금 여기 우리가 발디디고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세상법에 따라 살아간다고 해도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끊임없이 따져서 알고는 있어야 우리의 정신이 병들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입고 있는 우리의 몸은 한 생을 살기 위해 입고 있는 옷과 같은 것이다. 생을 마치고 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옷과 같은 몸이 기억하는 세상법이 아니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참 나가 기억하는 정신에 해인(海印)과도 같은 도장으로 새겨진 뿌린 대로 거두는 우주법이 아닐까?

병든다는 것은 말 그대로 병에 갇히는 것이다. 병은 주둥이만 있고 출구가 없다. 병에 한번 갇히면 병을 깨든지 아니면 들어간 주둥이로 거꾸로 빠져나올 방법밖에는 없다.

세상을 살면서 몸을 잘못 굴려 가장 심각한 병에 드는 것이 암에 걸리는 것이듯 우리의 정신이 세상법이라는 병에 한번 갇히면 세상에 취해 우주법은 까마득히 잊고 세상법을 따라가는 맹추(盲追) 같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린다.

기무정론(其無正論)의 해석의 핵심은 세상법과 우주법의 충돌이다. 뿌린 대로 거두는 우주법에서 바름은 한 가지로 정할 수 있으나 그때그때 다른 세상법에서 바름이란 너무나 많아서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아닐까 해석해 본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구는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하늘이 없다고 우기지만 기무정론(其無正論)에 불과한 세상법 위에 기유정론(其有正論)의 우주법이 엄연히 존재하거늘 인간세상은 자기가 두고 온 곳이며 자기가 가야 할 곳인 자연을 세상이라는 병에 갇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기무정론(其無正論)의 세상법에 따라 시비곡직을 따지니 노자가 "바름(正)은 아예 없다. 바름은 인간 본성에 기인한 품성이 아니라 어울려 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논리이니 이 또한 실체가 없도다. 그러니 바름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음을 깨달아라"라고 일갈하듯이 우주적 차원의 바름을 세상에서 구하기는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마찬가지인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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