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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학, 그 여정의 끝은 어디에

by 윤해



2024.06.27

과학은 문제의 대상을 잘게 나누어 배워서 문제를 정복하는 학문이다. 과학에 과를 파자하면 벼화에 말두 이다 . 즉 쌀을 한말 두말 나눈다는 의미에서 나눌 과라고 하는 글자가 탄생했다. 이 나눈다는 과학의 정신이 결국 수천년 동안 인간의 정신에 자리잡은 신화와 종교의 스토리를 밀어내고 그 스토리를 잘게 나누어 검증하여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지난한 과정끝에 현대 과학문명 시대를 열었다.

신화와 종교의 질긴 압제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바뀐 르네상스, 문예부흥의 강력한 도구로 등장한 과학은 거칠것 없는 속도로 달려와 과학만능 세상을 만들었다.

현대 과학은 물질을 분자에서 원자 양성자와 전자 , 핵까지 쪼개어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해 발명되고 개발된 현미경 ,SEM,TEM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물질의 최소단위까지 파고 드는 데 눈부신 성공을 달려왔다. 진정한 과학정신의 승리인 것이다.

입대해서 제식훈련을 받고나면 총이 지급된다. 총을 받고 총기 일련번호를 외우고 총은 제2의 생명이라는 정신교육을 세뇌수준으로 받고난 다음 총기를 분해한다. 분해까지는 호기롭게 하지만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라는 조교의 한마디 말만 믿고 조립에 들어가면 웬만한 눈썰미로는 분해와 조립의 수준차는 하늘과 땅 차이임을 절감한다. 그래도 군기의 힘으로 어찌어찌 반복을 하다보면 어느새 숙달된 100 소총수로 탈바꿈 되어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사소한 물건 하나도 이렇게 분해와 조립의 기술수준이 천양지차인데 하물며 생명을 가진 생체를 분해조립 한다는 발상이 얼마나 허구이고 무시무시한 발상인지는 간과하기 쉽상인 것이 현대 과학을 앞세운 모든 분야의 기술수준이다.

어쩌면 과학의 최대 맹점이 바로 나누고 분해해서 문제의 원인을 알아내는 데 까지는 특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물질문명 분야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 하였지만 생명을 가진 생체에 있어서는 험난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살고있는 과학기반 문명의 적나라한 현주소다

과학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현대문명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우리가 거쳐 온 신화와 신학의 관성을 잊지 않고 불완전한 신을 믿듯이 과학을 종교의 개념으로 맹신하기 시작했다. 그 옛날 신의 대리자로 온갖 전횡을 일삼던 사제들의 폭압으로 고통받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새로운 과학 문명시대를 열었지만 우리의 뇌구조는 지나간 신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여전히 신을 믿듯히 과학을 맹신하고 과학을 종교의 신으로 대체하는 역사의 평행이론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가 지나온 신이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듯이 우리가 철썩같이 믿고 있는 과학도 만능이 아니다. 비록 현대과학문명의 새로운 사제역할을 하고 있는 과학자, 특히 과학기반의 생명을 다루는 생명과학자와 의사들의 만용과 오만은 우리들에게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상존한다.

과학만능 시대에도 과학이 필요한 영역과 불완전한 과학의 여정으로 인한 실패가 존재함을 충분히 숙지하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도 삶의 지혜 아닐까 생각해 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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