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2
작열하는 태양을 뒤로하고 시원한 장맛비가 대지를 적신다.
대지에 뿌리는 빗줄기를 보면서 태양과 구름과 비의 삼각관계를 생각해 본다.
구름 위에는 여전히 작열하는 태양이 비추고 구름 아래에서는 거세게 뿌리는 비를 피해 우왕좌왕하는 세상이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가?
보이는 비일까? 아니면 구름에 가려 볼 수 없는 태양일까?
"이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라는 명제만큼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 인간에게 와닿는 말도 드물다. 사건과 에피소드는 물론 생멸마저 시간이 지나면 원래 상태대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취해 살다 보면 늘 우리는 오늘 만을 잡고 (카르페 디엠), 죽음을 기억하며( 메멘토 모리),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운명을 사랑할(아모르파티)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우리의 한계를 절감한다.
구름 아래 비를 맞으며 사는 존재로서 우리 인간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것을 불평하고 해가 나면 해가 나는 것에 투덜 되기 쉽다. 즉 비가 올 때 구름 위에 태양을 보는 사람은 드물고 구름 한 점 없이 땡볕이 내려 쬘 때 하늘이 뚫린 듯 장대 같은 비가 내림을 믿기도 어렵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그리고 문자명왕(文咨明王)에 이르기까지, 128년 동안 동북아의 절대강자로 군림한 고구려 전성시대를 연 고구려 개마무사들은 한결같이 구름 위의 태양을 본 사람들이다. 지금 비록 비가 뿌리는 질척한 전장에서 비와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그들은 오늘을 희생하여 보다 넓은 영토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미래의 후손을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혜안을 이미 가졌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들이 오늘의 안일과 타협하였다면 만약 그들이 구름 아래 비만 보았더라면 그들의 말발굽이 향한 곳은 요동의 벌판이 아니라 동족을 향해 한 줌 권력을 쥐고 흔들 회군에 이은 쿠데타였으리라
이처럼 역사의 승자는 구름 위에 태양을 보는 광개토대왕, 장수왕, 문자명왕(文咨明王) 시대에서 살신성인한 고구려 개마무사들의 웅혼한 기상이지 원말명초의 격변기에 요동정벌에 나섰다가 말머리를 돌린 위화도 회군을 통해 고려의 숨통을 끊고 한 줌 권력을 쟁취한 구름아래 비를 본 이성계의 조선이 아니었다.
역사는 늘 반복된다. 즉 역사의 평행이론은 그칠 줄을 모른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극적으로 부활한 대한민국의 역사도 고구려 개마무사들과 같은 혜안과 살신성인 그리고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우리를 여기까지 올린 히든 히어로들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구름 위의 태양을 보지 못하고 구름 아래 비에 집중하면서 도로 조선으로 돌아가고자 안간힘을 쓰는 역사의 패자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우리 공동체의 약한 고리를 끊고자 열심이다.
그런 시도는 사필귀정으로 정리될 것이다. 다만 그들은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국호가 위화도 회군으로 세워진 조선이 아니라 만주벌판을 내달리던 고구려 개마무사의 웅혼한 기상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KOREA 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