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3
역사는 멀고 오래될수록 더 잘 보이고 객관적이며, 가깝고 근현대로 올수록 더 헷갈리며 주관적이다.
역동적이며 다이내믹한 역사의 흐름은 토인비의 말처럼 도전과 응전, 헤겔의 인용처럼 정반합의 원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드러난 전쟁과 드러나지 않는 암투가 반복된 결과이다.
지금의 국가 체제와 그때의 국가 정체성이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정학적 위치를 공유하였다 하여 지금의 국가를 그때의 국가로 보는 것이 오류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는 대체로 타당하다.
또 때때로 동일한 지정학적 위치를 시대적으로 공유하는 나라의 특징은 전쟁이나 혁명 같은 강력한 외압과 내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일반화의 오류로 국가를 바라보기 쉬운 조건이기도 하다.
주변나라를 어떤 나라인지 정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UN의 승인을 받으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나라가 독립한 와중에 개발도상국을 너머 중진국의 함정을 간단히 뛰어넘고 세계 10위권 내의 무역선진국으로 진입한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무이하다.
국가는 나라고 하는 개인이 모여 집단을 만들어 우리를 형성하고 우리가 모여 또 국가라고 하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 속에는 나와 우리가 복합적으로 숨어있고 어떨 때에는 나라고 하는 개인이 또 어떨 때에는 우리라고 하는 집단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국가발전을 견인하기도 퇴보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대한민국은 혈연을 같이 하고 기회만 되면 반드시 통일을 도모해야 할 북녘 동포들과도 근 80 년의 분단으로 인한 정서적 분리는 이제 가늠조차 어렵다. 왕조시대를 거쳐 제국식민 신민에서 자유대한민국의 시민이 된 우리와 여전히 왕조세습국가의 백성으로 남아있는 북녘동포들 사이의 이념적 정서적 차이는 비록 물리적으로 붙어있고 핏줄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그 간극을 메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대한민국은 물리적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정서와 상식을 공유하는 미국을 위시한 서방선진국과 이념적으로 가까운 지경에 와있다. 마찬가지로 주변국가라 하더라도 중국과 같은 공산국가와 정서를 공유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미중 패권시대에 어디로 줄을 서는가가 국가의 흥망이 달린 지금 국가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것도 우리 대한민국의 진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이다.
그런 면에서 이념결사체로서의 국가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이 지피지기면 백전무퇴라고 하는 손자병법의 지혜로서 험난한 국제외교 전의 승자가 되는 길이라 믿는다.
신냉전의 시대적 파고가 또다시 세계를 전쟁의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글로벌화된 세상에서 외교는 한 국가를 번영으로 이끌기도 하고 나락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전쟁이라는 거친 외교는 물론이고 동맹과 적대라는 대결 구도가 일상화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향한 군비경쟁이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
원교근공, 합종연횡, 이이제이의 국가 간의 이합집산이 그때그때 이해관계와 국익에 따라 정신이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게 돌아갈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내부의 적을 단속하고 대동단결하여 국익에 따라 국가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고금을 관통하여 흐르는 세상의 원리요 국가의 번영을 이끄는 자연스러운 섭리임을 깨닫는 나가 많은 나라가 신냉전의 그레이트 게임에서 살아남아 번영하는 국가가 된다는 것은 이미 역사를 통해 증명된 만고의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