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4
신라(新羅),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이라는 국호로 만 가지 어려움과 천 가지 위태로움을 극복하고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를 통일하여 통일신라라는 천년왕국을 세워 민족을 하나로 뭉쳐 한민족이라는 원류를 우리에게 심어준 신라에 대해 의외로 우리는 잘 모른다.
만주벌판을 호령하며 말을 달리며 중국의 통일왕조와 자웅을 가리던 고구려 개마무사 철갑기병의 웅혼한 기상도 남중국과 왜를 가로지르는 바다를 열어 화려한 해상제국을 연 백제의 찬란했던 문화도 없이 궁벽한 경상도 한 귀퉁이에서 김해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가야를 복속시키면서 그나마 삼국의 일원으로 등장한 화랑의 나라 신라는 여러모로 태동부터가 신화로 가리어져 있는 미지의 국가다.
그러나 삼국 중에서도 최약체국가가 비록 당과 연합하는 고육책(苦肉策)을 동원해 기어이 삼국을 통일하고 당이라는 외세마저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신라의 통일전쟁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로서도 손색이 없다.
역사상 천년왕국은 드물다. 그 드문 왕국이 기원전 57년 6월 8일 진한 사로국에서 출발하여 삼국시대 신라를 거쳐 통일신라시대를 지나 후삼국 신라까지 격변하는 역사적 흐름과 체제변화 속에서도 국가를 지켜내었던 천년왕국 신라가 서기 936년 1월 13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바침으로서 992년을 버텨낸 천년사직도 마감되고 마의태자의 슬픈 전설만이 천년사직의 아쉬움으로 남아 널리 회자되지만 나라는 망해도 생명줄의 질긴 실타래는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의 반전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마의태자 김일이 고려에 저항하여 싸우다 금강산에서 죽고 살아남은 그의 이복형 김분과 신라유민의 엑소더스는 함경도를 거쳐 길림성을 지나 흑룡강성에 정착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려 자손을 놓고 신라왕자 김분의 7 세손이 바로 금나라를 건국한 금태조 아골타로 이어지고 국호 자체가 김 씨의 나라 금이라 지은 이유이기도 하다.
강력했던 금나라가 세계최강 몽골에게 망하고 몽골이 명에게 쫓겨 북원이 되어 초원으로 쫓겨나고 금의 멸망 이후 원과 명의 이이제이 정책에 의해 철저하게 분열되었던 여진족을 다시 통합하고 후금을 세운 영웅이 바로 애신각라(愛新覺羅), 즉 신라의 김씨족이라 스스로를 밝힌 김누르하치이며 그 뒤를 이은 청태종 김홍타이지 그리고 마지막 황제 김푸이까지 청나라 황실은 스스로를 애신각라, 김씨족이라 부르며 기록으로도 남겨 청의 6대 황제 건륭제가 감수한 만주족의 역사서 흠정만주원류고에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후금에서 청으로 이어지던 동아시아 격변기에 주인공으로서 김 씨의 나라, 애신각라(愛新覺羅)를 계승한 1616년 김누르하치의 후금국의 질긴 생명줄의 인연을 자르고 국호를 대청국이라 바꾼 김홍타이지 청태종이 친정한 병자년의 호란으로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고 두 아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잡히고서야 사직을 지킬 수 있었다.
왕조시대 왕이나 황제가 친정한 전쟁에서 승리한 싸움에서 끝까지 저항한 적의 왕을 살려주고 사직을 지키게 하고 물러간 전쟁사의 드문 사례가 삼전도의 치욕으로 대변되는 병자호란이다.
그 당시 동북아의 국제정세가 지는 명나라와 뜨는 청나라 간의 천하를 누가 가지느냐는 건곤일척의 싸움이었겠지만 애신각라(愛新覺羅) 김홍타이지가 비록 청태종의 자격으로 조선에 친정했지만 여전히 자신과 조상들의 뿌리가 천년왕국 신라와 연결되어 있다는 유전적 자각에서 만큼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던 김홍타이지이자 청태종인 그의 번민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짐작하는 것이 단순한 상상일지 궁금하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천년왕국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 신라의 후손으로서 천하통일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그의 조상의 혼이 숨 쉬는 고토에서 한반도라는 좁은 땅덩이에 갇혀 한 줌의 권력을 보전키 위해 남한산성에서 농성하던 인조를 삼전도에서 끓리고 삼배구고두라는 항복의식을 내려다보면서 청태종 아니 김홍타이지가 느꼈을 감회는 단순한 승자의 쾌감보다는 어서 바삐 한반도를 빠져나가 만주벌판을 달리고 요동을 가로질러 산하이관을 넘어 대륙의 심장을 관통하여 그의 강역을 티베트 히말라야까지 넓혀 천하를 손에 넣고 말겠다는 원대한 포부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상상이 현실이 되어 마침내 청태종의 꿈은 도르곤을 앞장 세워 산하이관을 넘었고 산하이관을 지나 북경에 입성하는 도르곤의 옆에 또 다른 청태종, 김홍타이지가 꿈꾸던 애신각라의 고국에서 볼모로 잡아 데리고 온 소현세자도 천하통일의 역사적 현장을 함께한 것은 같은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의 천년왕국 신라의 후예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영광이었으리라 상상한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궁금해진다.
선양 홍타이지 청태종능, 소릉(昭陵) 소릉은 인위적으로 만든 내(川)를 건너면 솔밭 사이로 커다란 궐 안에 분묘가 있다. 분묘꼭대기에는 큰 비술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그 비술나무에 내려앉은 까마귀가 복을 불러오는 고구려 삼족오가 되어 날개를 펼쳐 애신각라(愛新覺羅)의 대청제국으로 부활하여 기어이 천하를 가지는 동안 한반도로 돌아간 천년왕국 신라의 후예 소현세자는 천신만고 귀국한 조선에서 대륙에서 보고 들은 귀중한 경험을 펼치지도 못한 채 어느 후미진 궁궐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하고 조선을 개혁하지 못한 한이 나무가 되어 경복궁 경내에 서있는 네 그루 비술나무가 되어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삼족오가 날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