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7.01
지정학적 저주, 자원의 저주를 극복하기 위해 주저 없이 한마음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마지막 열차에 올라탄 우리 대한민국 앞에 등장한 마지막(?) 저주는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이 저주를 푸는 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의 정반합만큼이나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그 국민들이 공동체의 목표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달려왔는 가라고 하는 역사 인식을 공유하는가 그렇지 않은 가에 따라 그 나라의 미래가 흥하느냐 망하는가가 결정된다.
이처럼 가난의 저주에서 빠져나오기도 힘들지만 풍요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고난도의 의식과 저주에서 물러나지 않고 주저하지 않는 꿋꿋한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사랑은 획득한 자에게는 생활이 되어 사라지고 도리어 잃어버린 자의 가슴속에서 숨 쉬면서 부활하듯이 가난이라는 고난도 일단 벗어나면 저주가 풀려난 백설공주와 같이 잠자고 있던 저주의 기억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풍요라고 하는 새로운 저주 앞에서 주저주저하다가 풍요의 바다에 풍덩 빠져 좀체 헤엄쳐 나오기 어려운 저주의 심연에 빠지는 것이다.
왕은 친히 군대를 이끌고 지금의 요서(遼西, 요동강 서쪽) 지역인 시라무렌강 유역 패려(稗麗)를 공략하였으며, 러시아 극동 연해주 일대의 숙신(肅愼)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신라를 침입한 왜를 격파하기 위해 보병과 기병 5만 명을 보냈고, 백제성을 공략하기 위해 아리수(阿利水, 지금의 한강)를 건넜다."라는 내용의 총 글자 수 1,775자, 그중 140여 자 자연 마모나 인위적 파손으로 추정되는 호태왕 광개토대왕 비문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감회는 어떨까? 상상해 본다.
고구려 철갑기마병 개마무사들의 압도적 무력으로 만주벌판을 가로질러 나라의 강역을 동서남북으로 넓힌 광개토대왕의 웅혼한 기상은 한반도에 갇힌 것도 모자라 남북으로 허리가 잘려 유라시아 대륙의 끝단의 반도인지 섬인지 모를 지정학적 저주에 놓인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그저 신화처럼 다가온다.
18세에 즉위하여 39년이라는 짧은 생애동안 광개토대왕이 이룬 치적은 그의 아들 장수왕으로 이어지고 뒤이어 중원의 패자 수, 당의 그 당시 세계 최고 제국의 제왕들도 하나 같이 고구려 정벌에 나선 것도 고구려를 제압하지 못한 중원의 패자는 결코 중국 대륙 통일을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동북아의 세계질서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이 같은 고구려 개마무사들의 투혼은 비록 고구려 멸망 이후 사대교린이라는 중화질서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누가 중원의 패자가 되어도 고구려의 후손 우리 한민족은 늘 넘버 2의 위치에 있게 하였고 그 중화질서 속에서 한민족이 중화질서 안에 편입되어 사대이소한다는 것 자체가 중화 왕조의 자랑이며 그들의 정통성을 내세우는 데 있어 마지막 퍼즐임을 알고 있는 후손들은 드물다.
그렇다. 우리는 그런 역사를 가지고 소중화라는 문화적 역량뿐만 아니라 무력에서도 만만치 않은 전통을 지닌 나라의 후손들이다.
근세에 들어와 뼈아픈 망국과 함께 식민사관에 알게 모르게 절여져 모든 것이 전쟁과 역사적 혼란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왜곡과 분칠과 덧칠로 지정학적 자원적 저주로 우리 민족의 발전을 주저주저하게 하였다면 그 저주를 주저하지 않고 풀어 과감히 일어나 고구려 개마무사의 기상처럼 일어난 민족 또한 우리 한민족이다.
가난에서 빠져나와 풍요의 바다에 다다른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저주는 아마 정치적 저주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지정학적 저주, 자원적 저주는 가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 나오는 것으로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풍요의 바다에서 풍랑 치는 삼각파도같이 마주친 정치적 저주는 반만년을 이어온 민족정기 마저 갈라치고 사분오열 시켜 현대의 세계질서 속에서도 마지막 퍼즐인 대한민국의 위상을 퇴보시키고 깍아내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역사의 정반합을 통하여 국가의 흥망성쇠의 요체가 무력뿐만 아니라 바른 다스림, 정치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갈 때 비로소 그 나라는 저주를 푸는데 주저하지 않는 나가 모인 번영된 나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