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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한심, 방심 그러면 진심은 어디에

by 윤해



2024.07.09

바늘 가는데 실 가듯이 마음 가는 곳에 몸도 따라간다. 우리가 마음을 쏟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에너지를 투입하는 행위이다. 이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도 꽤나 다양한데 과연 그 뜻을 알고 쓰는 것인지 그것도 궁금하다.

마음을 표현하는 말 중에 가장 마음이란 개념을 잘 설명해 주는 말이 바로 무심이란 말이다. 무심의 무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너무 많아 헤아릴 수 없다는 중의적인 말이다.
즉 마음이라는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의식인데 인간 자체가 무수한 세포가 모여 구성된 우주를 닮은 존재이기 때문에 분자생물학적으로 따지면 개별세포의 의식 하나하나가 모여 나라고 하는 전체 의식을 만들고 이 의식이 모여 마음을 만들면서 이 마음이라는 것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존재이므로 이렇듯 마음을 잡는다는 것은 어쩌면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마음 나도 몰라 라는 말이 나왔고 , 마음을 살 수 있다면 세상을 가질 수 있다는 격언도 심심찮게 들린다. 반대로 마음을 닫으면 그 어떤 방법도 속수무책이라는 것도 경험을 통해 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마음을 가지고 시도를 해본다. 한 번은 무심해졌다가 또 한 번은 한심해졌다가 그리고 어떤 때는 방심해보기도 하면서 도대체 진심은 어디에 있는지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관계에서 이러한 마음 씀씀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은 단연코 가족일 것이다. 가족만큼 많은 시간과 기억을 공유하는 관계는 없으므로 우리는 가족 간의 관계에서 서로서로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다는 그릇된 가정을 세우기가 십상이다. 그릇된 가정은 잘못된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결국 모두의 선의로 시작된 마음이 갈갈이 찢어지는 파국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되는 걸까? 먼저 우리는 무심으로 정의되는 마음이라고 하는 속성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말 그대로 한심한 지경에 놓여 있음을 알아야 하며 이 한심한 지경을 인지하지 못하고 한걸음 나아가 나는 너의 마음을 너무 잘 안다는 얼토당토않은 방심의 단계까지 쭉 나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마음을 두고 방심하지 말아야 함에도 한심할 정도로 마음을 다루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구조적 함정에 빠져 있는 상태 아닐까?

마음은 다층적이며 시간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종잡을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섬세하게 접근하려면 결국 우리 각자의 마음을 향한 에너지 준위가 높아야 한다. 즉 마음의 속성은 무심하므로 한심하게 마음을 대하지 말고 조금도 방심하지 않을 때 비로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타인의 진심임을 가슴에 새겨야 마음으로 인해 생기는 파국을 조금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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