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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존재하는 즐거움을 덥석 집을 손이 없구나

by 윤해



2024.07.10

진리어인 우리말은 말 하나하나마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속뜻이 많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분 저분 하는 말을 들으면 경칭으로 생각하지만 분이라는 말은 몫을 가져가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오히려 이 사람 저 사람이라 해야 상대를 존중하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이놈 저놈은 욕으로 인식하지만 실은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인 줄은 까마득히 모른다. 그렇게 업을 내려놓아야 놈이 되고 내려놓은 놈이 팽이처럼 팽팽 인생의 즐거움을 돌리는 사람을 놈팽이라 하고 영어가 들어오면서 음만 차역 하여 룸팬이 되어 산업화 시대에서는 업을 놓고 나만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을 죄악시하는 개념이 출현한 것이다.

업은 그 업이 재벌총수의 업이 되었든 막일 잡부의 업이 되었든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도처에 누군가가 가지려고 하는 재화를 내게로 가져오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업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경쟁하다 보면 갖가지 업장을 쌓기 마련이다. 단지 재벌총수의 업장과 막일 잡부의 업장의 크기만 다를 뿐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생존하기 위해 업을 가지고 이 업을 강화하고 갈고닦는 과정으로 직업을 가지고 가정도 꾸리고 자식도 양육하고 교육도 시키고 한세대가 흐르면 직업에서 은퇴하고 다음 세대에게 직업을 넘겨주고 우리는 업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인생은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이 업이라는 관성은 질기고도 질겨서 한번 잡으면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직장에서 나이를 정해 정년퇴직 시키지 않으면 천년만년이라도 업장을 쌓을 태세이다. 마치 혈관에 혈전이 군데군데 끼어서 혈액이 매끄럽게 흐르지 못하는 모양새다.


나이가 되면 업을 내려놓고 놈팡이가 되어 그동안 본의 아니게 쌓았던 업장을 소멸하고 본인 만의 개성으로 신나게 놀아야 인생의 한 바퀴가 완성되만 형편이 나은 사람은 나은 사람대로 불안해서 못놀고 형편이 못한 사람은 시지프스의 노동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는 것이 우리 모두의 형편이다.

스스로 못하는 일을 시대가 해결해 주기도 한다. 농경시대를 지나 산업화 시대를 넘어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는가 싶더니만 이제 바야흐로 로봇과 AI 가 결합된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점점 줄어들어 마침내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우리의 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대상황과 마주해 있다.


이제 산업화 시대의 관성은 시대가 용납 못하는 단계에 와 있다. 업을 내려놓고 도처에 널려있는 즐거움을 손으로 잡으면 된다.


다만 그 손은 두 손으로 반드시 업을 놓은 손이어야 되지 한 손엔 업을 한 손엔 즐거움을 집으려 한다면 끝없는 업장소멸의 공회전을 돌리는 영구기관울 만드는 형국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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