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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Aug 08. 2024

감사하는 사람, 따지는 사람



2024.08.09

오늘 하루도 어김없이 태양은 뜨고 새날이 시작되었다. 문득 공부는 왜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지만 머릿속이 무겁고 뒤죽박죽 된 느낌이 들어 머릿속을 비우려고 무척 애썼던 기억이 난다. 공부에도 리듬이 있어 넣었다 뺏다를 자유자재로 하는 사람이 마냥 부러운 때가 다가온다.  그 시절 유행처럼 찾아온 동양사상에 심취하여  좌법 참선 명상 기공으로 이어지는 세상과는 색다른 분야에 자신을 투신하는 젊은이도 많았고 번잡하고 경쟁 일변도의 세상에 염증을 느껴 세상을 등지고 자신만이 느끼는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자신이 세상적으로 가진 많은 것을 내려놓은 사람도 드문 드문 눈에 띈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도 이십여 년이 훌쩍 넘어 나름대로 결산을 해보면 끝을 모르고 달려가고 있는 세상이라는 급행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의 뒤끝이 하나 같이 순탄치 않음을 절감한다.

우리 인류가 만든 세상이라는 가상공간의 너비와 깊이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그 역사와 전통이 비록 농업혁명 이후에 생겨난 것이라 하더라도 만여 년을 훌쩍 넘었고 그 세월 동안 강화된 인류문명이라고 하는 가상세계 속의 질서 또한 백 년을 살지 못하는 개별 생명체로써는 저항하기 쉽지 않을 만큼의 허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허들을 넘지 못한 개별 생명체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질서는 가혹하리만치 엄중하다. 비록 세상의 질서가 인간이 만든 가상세계 속의 질서라 하더라도 그 질서 역시 코스메틱 한 자연의 섭리를 벗어날 수는 없으므로 자연계의 적자생존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질서를 외면한 자에게는 도태라고 하는 세상의 원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섭리와 세상의 원리를 조화로운 균형으로 밀고 나가는 모든 것이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부분만 알아서는 전체를 알 수없고 전체를 안다고 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꿰차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향하는 배움은  전체와 부분의 조화로운 균형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부분 부분만 아는 지식인은 한 분야를 파고들어 세상의 질서라는 원리 안에서 먹고살면서 생존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삶의 가치를 추구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지혜를 가지고 자연의 섭리에 눈을 뜬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살아갈 단 하나의 방편도 가지지 못하면 적수공권으로 무자비한  세상이라는 또 다른 정글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자연의 섭리로 세상을 보면 온통 감사할 일 투성이다. 자연에서 기생하고 있는 인류에게 있어 자연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따뜻한 햇살이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며 휘황 찬란한 꽃들의 향연에다가 기암괴석과 온갖 동식물 모두가 저절로 그러하게 우리를 위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한 착각이 저절로 들게 만든다.

반면에 세상의 원리로 세상을 보면 한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따져보고 또 따지는 사람이 되지 못하면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져 누군가의 밥으로 전락한다는 슬픈 현실을 외면하려 해도 외면할 수 없는 제로섬 게임이 링크로 연결된 가상세계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이제 문명이라는 인류가 만든 가상세계는 차디찬 기계와 만나 점점 더 옴짝달싹할 수 없는 경직된 질서 속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육체노동을 인간으로부터 아웃소싱한  산업혁명 이후의  기계문명에서  지능까지도 아웃소싱된  AI 혁명이라는 문명의 특이점에 서 있는 다가올 다음 인류에게 알려주고 싶은 말은 세상의 원리보다는 자연의 섭리에 귀 기울여야  조화롭고 균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한마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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