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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Aug 07. 2024

바다의 일출, 초원의 일출



2024.08.08

예나 지금이나 최전방 육군 보병사단은 늘 경계근무에 사활을 건다. 해수면이 지면보다 높은 네덜란드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가냘픈 팔뚝 하나로 밤새 둑을 지켜낸 소년처럼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복을 입는 순간부터 적의 침공으로부터 국가와 가족을 지키는 초병의 임무는 군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온다.

그래서 군대생활 어려움의 태반은 잠과 졸음을 견뎌내는 야간경계근무, 보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동해안의 긴 해안선과 금강산과 해금강을 바라보는 험준한 산악지형을 함께 경계해야 하는 내가 군복무를 한 강원도 보병사단은 늘 경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사단장부터 분대장까지 경계근무에 사활을 거는 보병사단이었다.

보초 근무시간은 전반야 이른 시간이거나 후반야 늦은 시간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자다 깨서 일어나 2시간 정도 근무에 투입되다 보면 수면리듬은 엉망이 되기 십상이다. 이렇듯 애국은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 자기희생의 모습으로 병역을 이행하는 젊은 날 우리에게 다가왔다.

일진 좋은 보초 근무 3박자는  인간, 공간, 시간의 3간을 만족해야 한다. 즉 과묵한 선임, 대공 초소, 후반야 마지막 근무 이 세 가지가 우리 부대 베스트 보초 근무 3박자였다.

대공초소는 하늘로 침투한 적기를 감시 경계하는 곳이지만 후반야 새벽 일출 무렵에 투입된 초병의 두 눈은 현실성 없는 여명의 하늘보다는 동해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 너머에서 쏟고 쳐 오르는 장엄한 태양에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을 볼 수 없는 한반도의 일출은 동해바다 수평선을 뚫고 나오는 일출을 보지 못하면 산등성이나 빌딩숲 사이로  빼꼼히 비집고 떠오르는 때 늦은 일출을 보기가 십상인 곳이 지평선을 볼 수 없는 산지 70%를 차지하는  우리가 사는 한반도이다.


 일출이 젊음의 표상이라면 일몰은 노년의 상징일까? 현상을 가상으로 바꾸어 의미를 만들고 의미를 느낌으로 변환시켜 행동하는 우리에게 태양의 출몰이라는 일출과 일몰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지구라는 공간 속에서 사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 태양의 출몰은 시간의 흐름에 불과하다.  일출은 하루의 시작이며 일몰은 하루의 마감이다. 그리고 밤새도록 별을 헤며 꿈을 꾸면서 낮동안에 사느라 지친 몸을 회복하면서 다시 한번 태양이 뜨기를 학수고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다림 끝에 떠오르는 태양은 그 인간이 처한 공간이 초원이 되었던 바다가 되었건 느낌과 감동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인생을 쇠털 같은 날들이라고 표현한다. 그 쇠털같이 빽빽하고 수많은 날들 중에 일출의 설렘과 일몰의 허전함을 느끼는 날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세상에 정신이 팔려 보다 소중한 감동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삶이 안타까운 일로 점철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초원의 일출이던 바다의 일출이던 산 위로 떠오르는 일출이던 심지어 빌딩숲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던 일출을 가슴에 담고 하루를 시작하고 서산 너머 지평선 또는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장엄한 일몰을 보면서 하루의 마무리를 하는 것은 우리 인류의
 오래된 루틴이다.

알람시계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고 나인 투 식스라는 노동시간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은  인공의 시계 안에 존재하겠지만 기실 시계 안에 존재하는 시간의 역사는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증기기관차와 증기선이 운행을 시작했던 산업혁명 이후에 생겨난 일천한 역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우리 인류가 경험하며 희로애락을 느꼈던 대부분의 시간은 일출과 일몰이라는 대자연 속에서 출몰하던 태양이라는 존재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면서 태양계 속에서 살아가는 티끌 같은 존재로서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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