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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May 17. 2024

인간이 다른 인간을 도울 수 있는가?



2024.05.17



거짓 위(僞)를 파자하면  사람인(人)에 위할 위(爲) 자로 구성되어 있다. 즉 사람을 위한다는 것은 거짓이다라고  글자 자체에 정의 내려놓았다. 한술 더 나아가 위선(僞善)이란 말은 또 무엇인가? 사람을 위한다는 것이 거짓이란 것은 알겠는데 착함과 덧붙여 거짓 착함은 또 무엇가?

인간이 모여사는 세상에 살면서 늘 우리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다. 열길 물속은 알겠는데 한길 사람 속을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한 세상을 살아간다.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은 알쏭달쏭하고 오리무중이며 급기야 내 마음 나도 몰라하며 마음 알기의 모라토리움을 외치며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인간에 대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시간 정도를 준수하면서 공간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음에 드는 한 곳에 정착하여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 아닐까?

그러면 정녕 인간의 마음은 왜 알 수 없는 것인가?


 도대체 마음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기에 마음을 알기도 , 잡기도 , 버리기도, 합하기도 어렵단 말인가? 매우 궁금했다.


어쩌면 이 마음을 모르고 세상을 향해 글을 쓴다는 것은 깜깜한 밤에 등불도 없이 길을 가는 것이요 , 눈먼 장님이 코끼리의 일부를 만지고 코끼리 전체 모습을 연상하는 것 같이 한 치 앞도 모르고 나아가는 것이다.

이 인간의 마음을 몰랐기에 인간들은 저마다 지레짐작을 가지고 자기 방식 대로 인간의 마음을 재단하고 억측하며 오해하기도 하고 착각에 빠져 온갖 선의로 포장된 폭력을 마음에 가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직면한 것이다.

 상처받은 짐승이 울부짖듯 마음에 상처를 받은 인간은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을 장착한 시한폭탄이다.


어쩌면 인간은 에덴동산이라는 낙원에서 쫓겨날 때부터 뱀이라는 사탄의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넘어간 이브의 과실과 아담의 실수가 합친 원죄가 겹쳐 두 사람이 비록 갈비뼈를 매개로 한 몸에서 나왔지만 마음이 갈라져 합쳐지지 못한 원죄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읽지도 믿지도 못하는 마음의 오해와  착각 때문에 인간이 이룬 찬란한 문명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상처라고 하는 근원적 원죄를 벗어나지 못한 트라우마를 가진 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 것이다.

위선이라고 하는 거짓 착함으로 상처 입고 헛헛한 우리의  마음을 감싸보지만 내면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마음의 소리만은 어쩌지 못해 원죄에 빠진 양심에 괴로워하다가 본심마저 잃어버린 한심한 상태가 어쩌면 우리 마음의 현주소 인지도 모르겠다.

상처에 상처를 덧대어 갑옷 같은 붕대로 무장한 우리 마음의 소리는 늘 희생양을 입속에 넣는 마음으로 또 다른 희생양을 요구한다.


거짓 행동을 덮기 위한 핑계무덤의 결과인 희생양의 숫자가 증가할수록 우리 마음속의 트라우마는 켜켜이 쌓이고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도 읽을 수도 없는 단계까지 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해 마음을 나누지도 합하지도 못한 지경에 다다른 인류 앞에 구세주로 자처하고 나타난 사탄과 같은 무리는 편익이라는 인간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사탕발림을 들고 나타나 위선이라고 하는 거짓 착함을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주면서 머리로는 선의로 가득한 호의로 시작되지만 손발은 사탄과 같은 무리가 쥐어준 편함과 이익이라는 사탕발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몸 따로 머리 따로 시작 따로 결과 따로인 이상과 현실의 구조적 괴리감을 메우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만 입히는 인간관계의 파탄을 향해 내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죄를 가진 우리 인간이 말과 글만이 아니라 쓰임까지 합체된 말씀과 글씀으로 분투노력한 결과가 우리가 이루어낸 문명상일 것이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론이 아닌 실전으로 양심만이 아닌 본심으로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도닥거리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달려온 결과가  인간이 사는 문명 세상이 아닐까?


비록 사탄의 무리가 편익이란 사탕발림으로 우리를 유혹하여도 지속가능한 세상을 물려주겠다는 우리 인류의 염원이 모이고 비록 그 와중에 상처받고 트라우마를 겪는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은 다른 인간을 도우는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확신하며 그것이 바로 인류 지혜자, 호모사피앤스가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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