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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시 은광과 안데스 감자

by 윤해



2024.08.30

문명의 근간이 된 1만여 년 전 농업혁명은 두 가지를 우리 인류에게 강제하여 확고한 세상의 원리로 만들었다.

그 두 가지는 화폐경제와 작물혁명이다.

농업혁명이라는 말 그대로 벼와 밀로 대표되는 농산물로 인류의 오랜 숙원인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잉여 농산물이라고 하는 잉여재화가 생겨 나면서 대를 이어 내려갈 수 있는 재화의 상속이 필요하여 가부장 제도가 공고히 되고 화폐경제가 확립되었다.

농업혁명은 단위면적당 작물 생산의 비약적 폭발을 가져왔으며 이러한 필요는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를 촉발시키고 대형포유류의 가축화는 소를 통한 경작혁명뿐만 아니라 말과 같은 침략 전쟁의 강력한 수단까지도 인류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4대 문명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인수감염을 통한 병원균의 교환까지도 활발히 일어나면서 면역을 획득한 구대륙의 인류가 빙하기 때 베링회랑을 걸어서 북아메리카를 지나고 유카탄 반도를 넘어 남아메리카까지 진출하여 면역이 없는 청정 인류가 된 채 대서양을 건너온 구대륙의 인류와 만년 만에 조우하게 된 신대륙 정복의 역사는 신대륙 인류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요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철기 냉병장기로 무장하고 말을 타고 나타난 구대륙 스페인 병사 수백 명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은 차치하더라도 병원균 청정 지역인 신대륙에서 퍼뜨린 구대륙 병사와 말에서 나온 병원균에 의해 속절없이 무너진 잉카제국을 위시한 아즈텍 마야 문명은 깡그리 멸종의 단계로 나아갔다.

신대륙을 정복한 스페인이 해발 4,090m 볼리비아 포토시에서 은을 발견하고 구대륙에 노다지를 안긴 사건은 대항해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농업혁명을 통해 문명을 일으킨 인류가 화폐경제를 만들고 시뇨리지(화폐주조차익) 효과의 극대화를 꾀하면서 시뇨리지에 대한 유혹과 반발 사이에서 부침을 거듭하다가 중세암흑시대라고 하는 신본주의에 파묻혀 있던 서양이 향신료를 구하기 위한 항해에 나섰다가 포토시 은광을 발견한 우연은 뒤이어 필연을 견인하여 화폐가 다시금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하였다.

해상 패권을 장악한 스페인이 남아메리카 볼리비아 지역에서 포토시 은광을 발견하며 질 좋은 은화가 대량으로 주조된 이후 시간이 지나 네덜란드 역시 일본 이와미 은광을 독점해 은화를 생산하면서 무역 분야에서 스페인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대항해 시대가 ‘은의 시대’라고 불리는 이유는 대항해 시대가 세계사의 물꼬를 바꾼 것과 같이 은이 화폐경제를 다시 한번 일으켜 세운 것이다.

이처럼 문명의 두 가지 근간 중 하나인 화폐라고 하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가상과 몸을 가진 생체로서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작물혁명이라는 실상도 쌀과 밀을 넘어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옥수수 감자와 같은 구황작물의 발견은 결국 실상의 작물이 가상의 화폐를 받쳐 주면서 문명을 견인했다.

볼리비아 해발 4,090m 포토시 은광의 순도 높은 은을 채굴하기 위해 지옥보다도 더 비참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신대륙 원주민의 배를 채워 주었던 안데스 산맥의 한 덩이의 감자라고 하는 실상은 그대로 은에서 화폐라고 하는 가상으로 재빨리 환원되었고 문명이 그토록 원했던 썩어 없어지지도 않고 대를 이어 영속하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화폐경제라고 하는 가상의 토대를 포토시 은과 안데스 감자는 훌륭히 그 역할과 직분을 수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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