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같은 듯, 또 다른 듯 호모사피엔스의 운명

by 윤해



2024.09.15

18세기 칼 폰 린네는 우리 인간을 부르는 계통분류학의 이름으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즉 "슬기로운 사람"의 라틴어로 명명했다. 호모 사피엔스 이전 260만 년 전에 호모 크레인스 , 기획하는 인간이 있었으며, 100만 년 전에 호모 이그나스, 불을 다스리는 인간도 있었다.

75만 년 전에 호모 쿠란스(달리는 인간), 50만 년 전에 호모 코쿠엔스(요리하는 인간), 30만 년 전에 호모 베네볼루수(배려하는 인간), 17.6만 년 전에 호모 리투알리스(의례 하는 인간), 4.5만 년 전에 호모 심파티쿠스( 공감하는 인간), 3.5만 년 전에 호모 스칼펜스 (조각하는 인간), 3.2만 년 전에 호모 스피리투알리스 (영적인 인간), 1.7만 년 전에 호모 콘템플란스(묵상하는 인간), 1.4만 년 전에 호모 도메스틱칸스 (교감하는 인간), 1.4만 년 전에 호모 코무니칸스 (더불어 사는 인간), 1.15만 년 전에 호모 렐리기오수스 (종교적 인간)도 있었다.

호모 homo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으니 머리가 혼란하여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생물학상 순수하고 질이 같은 이라고 나와 있다

어쨌든 같은에 방점을 두고 인류의 특성을 연대기 별로 구분한 내용이 이렇게 많다니 놀라울 뿐이다.

연대사적 동질성은 물론이고 지구라는 별에 함께 살고 있는 우리는 그때그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순수하고 동질 한 특성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지만, 그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그림자 일지도 모른다.

진짜 우리는 설명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는 개별적인 개성이 번득이는 밤하늘을 수놓는 모래알 같이 반짝이는 별과 같이 다양한 존재이리라 짐작한다.

적응과 생존, 그리고 번식이라는 절체절명의 목표를 가지고 살던 우리의 조상들은 밤하늘의 별과 같은 개성을 죽이고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여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인류로서 보이는 뚜렷한 동질성을 유지하는 생명체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동질성은 단일종으로서 지구의 수많은 다른 종을 추월하여 먹이사슬 최정점에 우리를 올려놓았다.

이합집산, 떨어지면 합하려 하고 모이면 흩어지듯이 문명의 특이점(特異點, singularity)이나 변곡점도 이 원리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렇게 힘을 합쳐 생태계의 정점에 선 우리 인류는 이제 인류 간의 처절한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가 창조한 문명 우리가 발명한 도구들이 점점 생물학적 기반의 우리를 억압하고 분리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부정의 단계로 나아가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만만치 않았듯이 앞으로 나아갈 길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같은 듯, 또 다른 듯 인류의 역사는 정반합 못지않게 애매모호함도 함께 가지고 여기까지 왔다.

그 애매모호함이 여백으로 작용하여 유연하게 외부환경에 적응한 우리 호모 사피엔스에게 조만간 닥쳐올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는 특이점(特異點, singularity)의 의미는 우리에게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이다.

우리가 문명이라는 가상세계를 만들어 실상의 세계를 우리의 뇌에서 지워나가는 동안 자연이라는 실상은 왜곡되거나 잊힌 존재가 되어 세상과 자연의 편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왜곡과 편차에 더해 이제 우리는 아예 가상 세계 안에서 터를 잡고 사는 호모sns, 호모카카오엔스(homo kakaoens)로 진화될 기세이다.

그것은 자연에서 나와 세상을 만들고 문명을 통한 가상세계를 창조해 나간 호모사피엔스의 운명 같은 것은 아닌지 막연히 사유해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성장의 과실 그리고 분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