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을 살면서 붙들어야 할 것도 놓아야 할 것도 마구마구 생긴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도 책을 읽는 까닭도 글을 쓰는 연원도 무엇을 붙들지 무엇을 놓을지를 알기 위함이다.
좁혀도 보고 넓혀도 보고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보며 좌충우돌하다 보면 대게 맷집도 생기고 굳은 살도 돋아나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호들갑을 떨지 않고 조금은 직면한 문제에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는 관조라는 것을 하게 된다.
관조가 되면 나름의 가치관으로 무엇이 중한지 무엇이 가벼운지 무엇이 결정적인지 무엇이 사소한지를 어느 정도 느끼며 사안의 경중과 완급을 가늠하는 잣대 하나를 겨우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고통의 바다, 즉 고해를 나름의 잣대를 돛대 삼고 삿대 삼아 일엽편주에 일신을 의탁하여 숙명에 머리를 기대고 운명에 몸을 움직이면서 세상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헤쳐나가는 처지가 우리의 모습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가만히 숨죽이고 엎드려 있어 봐도 시간이라는 운명의 초침은 제자리걸음만 해도 신발이 닳듯이 어느새 성큼성큼 반환점을 돌아 내리막길로 우리를 재촉한다.
잡을 때 잡아야 하고 놓을 때 놓아야 하는데 도무지 이 때라는 것을 알 수 없어서 집착과 일탈을 반복하면서 중독과 해탈 사이에서 방황하는 가여운 영혼으로 한 생을 사는 것이다.
붙들되 집착하지 않고 놓되 일탈하지 않으며 중독되지도 않고 해탈하려고 하지 않는 경지가 세상과 나와의 팽팽한 균형점인지도 모르겠다.
붙드는 부뜰이가 될지 놓는 놈으로 기억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지금부터는 더 많이 놓고 살아야 한다는 자연의 섭리가 붙들고 집착해야 한다는 세상의 원리보다는 더 설득력 있게 내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