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가 생물학적 섭리에 따라 우리가 한 세상을 사는 모습이라면
관혼상제는 사회학적 원리에 따라 우리가 한 세상을 사는 모습이다.
생로병사가 피할 수 없는 섭리라고 한다면 관혼상제는 선택할 수 있는 원리이다
관혼상제가 생의 껍데기라면 생로병사는 삶의 알맹이다.
마치 밤과 낮이 같고, 앞과 뒤가 같은 관혼상제의 원리와 생로병사의 섭리가 시의적절하고 균형있게 작동하고 있으면 우리는 행복에 다가가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전쟁의학에서 출발한 현대의학이 생로병사를 왜곡시켰다면 샤먼과 종교를 몰아낸 현대과학은 관혼상제를 하나하나 지워나가고 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생물학적 숙명에 도전장을 내민 현대의학은 생로병사의 각 단계에서 생과 사 사이에 있는 늙고 병드는 과정을 늘리고 왜곡하면서 평균수명 연장이라는 공공위생과 영양학의 공로를 가로채고 의료부문에서 평시를 전시로 바꾸면서 생사를 왜곡하였다.
현대 과학이 지워나간 유교적 전통인 관혼상제에서 관례는 성인의 날이라고 하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캘린더상의 일정으로 바뀌었고, 상례는 차디찬 병원에서 객사한 후 장례식장에서 삼일장을 치르는 장례식장례로 굳어진 지 오래되었으며, 제례는 이 땅의 며느리들이 타도해야 할 제1 주적으로 좌표 찍혀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이 되어 간소화를 거듭하다가 이제는 새로운 휴가여행일정으로 변신하였다.
그러면 관혼상제 중에 이제 남은 단 한 가지 혼례만이 우리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러나 악세는 혼례도 가만두지 않았다.
남녀 간의 만남과 섬싱(something)은 모조리 법의 영역 안에 가두어 야성이 남아 있는 남자는 일순간 폐미들의 한낱 먹잇감으로 전락한 오늘날 노다지가 된 여성을 스치는 순간 노다지가 노터치가 되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대한민국의 형사사법체계는 검수완박에 힘입어 눈 깜짝할 사이에 쇠고랑을 차고 전과자가 되는 일이 다반사인 세상에서 적령기 남자들을 보고 결혼을 도모해 보라고 하면 무슨 하늘을 봐야 별을 보지라는 유교가 극성이었던 시대의 규방에서나 들려올 법한 멘트가 날아오고 자신이 살기 위해 초식남이 된 구구하지만 공감되는 사연에 저절로 머리가 끄떡여진다.
여자들의 신세는 더 처량하다.
폐미전사를 얼핏 보면 가오도 있고 멋있어 보이지만 그저 한 떨기 청초한 꽃이 되어 사랑하는 미래의 낭군이 꺾어줘야 한 떨기 청초한 꽃이 탐스러운 열매가 열리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거늘 폐미는 제 스스로 갑옷을 겹쳐 입고 꽃봉오리를 닫는 것은 물론이요 혹여 지나가는 정신줄 놓는 수컷벌이 벌침이라도 놓을 조짐만 보이면 화생방 공격은 물론이고 핵공갈도 일상이니 어디 무서워 꽃 근처에 갈 수가 있겠는가?
실정이 이러하니 폐미꽃도 아닌 대부분의 꽃들도 같은 꽃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피기도 전에 시들고 늙어빠진 할미꽃이 되기 십상이니 , 악세를 만나 온몸이 으스러지게 노동만 하다가 할머니로 늙어 죽기가 불을 보듯 뻔하니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남자도 알고 여자도 아는 이 뻔한 사실을 두고 현대과학은 여권신장으로 둘러대니 그 결과는 여자들 신장, 키 커진 것 밖에는 없는 것 같은데 악세를 지배하는 현대과학은 우기기로 작정하고 우리를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
이러한 악세에서 만 가지 어려움을 뚫고 결혼과 혼인에 이른 이 땅의 청춘들에게 한없는 박수를 보내며 그대들은 그 자체로 대를 이어가는 효자이며 수많은 가스 라이팅에도 굴하지 않고 운명과 숙명이 같고 섭리와 원리가 같다는 것을 증명하고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로 생명줄이라는 전화선을 통해 우리들의 미래와 통화하기로 마음먹은 용기 있는 두 사람임을 자부해도 좋다.
우리 기성세대는 다만 이런 악세를 만든 책임감을 통감하고 한 줄의 참회록이라도 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