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해 록]떠나가는 배 기다리는 바람,대풍감(待風坎)
푸른 파도를 헤치며 떠나가는 배, 20억 년 전 아비규환의 바다를 뒤로하고 뭍으로 상륙하여 해당계 생명체에서 미토콘드리아 생명체로 세포차원의 진화를 통해 여기까지 달려온 우리 인류의 시원에는 생명의 고향과 같은 바다를 향한 로망이 본능 속에 아로새겨 있어 깨달은 자들은 그것을 바다의 인장 해인海印이라고 부른다.
46억 년이라는 헤아릴 수도 없는 지질학적 변화를 겪어온 지구에 적응하고 사는 생명체로서의 우리 인류는 생명을 잉태시키고 길러온 바다에 대한 시원을 알 수 없는 경외감을 느끼며 여전히 몸은 뭍에 있지만 바다를 의지하고 기대서 사는 생명체로서 바다는 고마움을 넘어 모든 것을 받아주는 바다로서의 역할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지구 자기가 해류를 만들고 해류가 바람을 일으켜 순환하는 지구를 만든 이래 우리 인류의 초미의 관심과 바람은 바람의 방향이었다. 바다로 나아갈 때의 바람과 뭍으로 상륙할 때의 바람은 달라야 했으며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가기도 했고 역풍에 휘말려 난파하기도 하는 것이 바다에 기대어 사는 뱃사람의 운명이요 숙명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바다는 어머니의 품처럼 평온하다가 악마의 발톱처럼 우리 인류를 할퀴고 몸서림 치는 고난을 주기도 한다.
울릉도 해담길 6-2를 가다 보면 대풍감 전망대를 만난다. 대풍감에서 자생하는 향나무와 송곳봉까지 이어지는 북쪽 해안 절경은 대한민국 10대 비경으로 손꼽는데 손색이 없다.
‘바람을 기다리는 절벽’이라는 의미의 대풍감(待風坎)은 뭍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바다로 나가려는 사람들에게는 바람이라는 바람이 달성되지 않으면 계속 뭍에 발이 묶여 나아갈 수 없는 개미지옥에 빠진 심정으로 바람이 순풍이 되어 돛을 높이 올리고 떠나가는 배에 몸을 의탁하고픈 바람으로 대풍감(待風坎)에 서서 바람을 기다리는 것이라 한다.
육지가 문명의 시발점이라고 한다면 바다는 자연의 시발점이다. 오대양 육대주를 제 집 마냥 누비는 우리 인류이지만 여전히 지각 위 육지에서 태동한 문명의 원리와 바다에서 태동한 자연의 섭리들을 하나하나 배워나가고 있는 지구의 스몰보이에 불과하다.
천지현황天地玄黃의 땅 위에서 이룩한 우리 인류의 문명도 창해일속滄海一粟의 바다로부터 시작된 한 줌의 좁쌀 같은 생명으로부터 시원됨을 여전히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뭍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19세기 대항해 시대를 너머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격변의 시대에 울릉도 원시림으로 만든 목재로 배를 만들고 울릉도라는 타지의 뭍에서 바다를 통해 거문도 초도草島, 고향의 뭍으로 돌아가려고 배를 띄우기 위해 대풍감(待風坎)에서 바람을 기다리던 울릉도 서쪽 깎아지른 절벽에 선 뱃사람들의 절박한 눈빛에서 천지현황天地玄黃의 문명도 창해일속滄海一粟이라는 생명도 돌고 돌아 돌아가는 시공간의 순환 속에 놓인 인간의 위치를 새삼 일깨워 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