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해 록 ] 들어먹는 군주君主, 나눠먹는 민주民主
주객은 전도되기도 하고 교체되기도 하며 모호하기도 하다. 모두가 주인이 되기도 어렵고 매 순간 나그네로 만족하기도 쉽지 않다.
자연이라고 하는 지구를 중심에 놓고 보면 우리 인간은 지구를 여행하는 나그네에 불과하고, 문명을 이루고 사는 지구 최상위 포식자라는 위치에서 우리 인류를 보면 우리는 누가 뭐래도 세상의 주인이다.
이처럼 주객은 어떠한 시각으로 보느냐라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모한다. 따라서 주객은 전도되며 교체되고 모호해질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필요에 의해서 만든 왕도 대를 이어 세습하다 보면 자신이 군주라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군주로서 누리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것은 물론 통째로 나라를 들어먹는 군주가 등장하여 왕조의 몰락을 가속화시켜 자신뿐만 아니라 나라의 명줄을 끊는다.
만승의 주인인 군주의 처신에 대해 노자는 이렇게 일갈한다.
聖人終日行 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성인종일행 불이치중, 수유영관 연처초연, 내하만승지주, 이이신경천하. (<노자> 제26장)
성인은 온종일 돌아다녀도 무거운 수레 곁을 떠나지 않고, 비록 화려한 곳에 있더라도 제비집에 머물 듯 편안하고 초연하니, 어찌 만승의 주인으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 몸을 가볍게 놀릴 수 있는가?
주인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좋아 보이지만 그에 따른 막중한 책임이 뒤따른다.
통째로 들어먹는 망국의 군주를 피해 군주제를 종식시키고 국민 개개인이 주인이 되고자 만든 민주국가를 출범시켰지만 그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독재라고 하는 과정을 반드시 겪어야 하는 주객전도가 일어나며 결국은 주객이 교체되어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고 나면 국가의 주인이 된 국민은 누가 주인인지 누가 객인지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주객의 악순환에 빠져 조금씩 나눠 먹는 민주는 통째로 들어먹는 군주가 타락하는 단계를 답습하다가 서서히 몰락하게 되는 것이 역사의 평행이론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 지경에 와 있다. 통일된 미일중러에 둘러싸인 분단된 남북한의 지정학적 안보리스크가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조에 있다고 하는 사실은 그대로 팩트다.
이러한 엄혹한 현실에 더해 통째로 들어 먹으려는 군주가 있는 북쪽과 조금씩 나눠 먹으려는 민주가 자리 잡은 남쪽의 실상은 마치 철 지난 군주제와 때 이른 민주제가 과거의 역사에서 환생하여 21세기 한반도에서 드라마틱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세계질서를 견인하려 하고 있는 모호한 상황을 혹시 우리 스스로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디로 어떻게 굴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강력한 린치핀을 가지고 만승의 수레바퀴를 수레의 축에 끼울 수 있는가 없는 가가 관건이다.
국민 개개인이 만승의 주인으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서 몸을 가볍게 놀리지 말고 옥석을 가리는 진중한 주인의 자세로 돌아와야 풀 수 있는 고난도의 문제 앞에 우리 모두는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