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결정되는 것인가? 만들어 가는 것인가? 아니면 숙명에 따라 운명은 이리저리 휘둘리며 갈피를 못 잡고 갈대처럼 휘청거리는 나약한 존재인가?
욕망의 금지는 내면의 폭발력을 증대시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처럼 내면의 힘을 응축시키고 자그마한 불씨가 도화선이 되어 절제할 수 없는 봇물처럼 공간을 흘러 인간을 덮치고 공간 안에 놓인 인간은 마치 숙명처럼 비극적인 운명의 강을 타고 가다 보면 오욕칠정을 생사고락으로 단순화시키면서 무욕의 경지로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서 소금과 만나 욕망은 절여지는 것이다.
망국의 독립전쟁에서 당랑거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1908년 6월생 매헌 윤봉길의사처럼 망국의 젊은이들을 단기필마로 일제에게 돌격시킨 백범 김구도, 일제에 침탈당한 망국의 한반도에 남아 다시는 망국하지 않겠다는 가슴의 비수를 품은 결기로 일제로부터 온갖 모욕과 수모를 와신상담하면서 자강을 통해 실력을 길렀던 1908년 1월생과 같은 망국의 젊은이를 키워냈던 비폭력 저항운동의 아이콘 3.1 독립선언 33인과 같은 망국의 지도자들도 제2차 세계대전의 광기 속에 변절과 죽음으로 차례차례 사라지고 말았다.
독립전쟁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체 외세에 기댄 해방과 광복은 갈등과 분열이라는 혼란 속에서 수많은 선각자들의 우려대로 남과 북이라는 분단의 현실과 마주했고, 김구는 소련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남북한 연석회의( 1948년 4월 18일~30일) 참석을 위해 수많은 지지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뚜벅뚜벅 평양으로 걸어 들어갔다. 1908년 6월생 윤봉길과 같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묻히고 얻은 광복의 결과가 남북분단이라는 지정학적 저주와 직면한 민족의 운명 앞에 김구는 삼팔선을 베고 죽겠다는 결연하고도 처연한 의지를 가지고 평양에 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회담을 악용한 스티코프의 마리오 네트 김일성의 기만전술과 일사불란한 공산당의 조직 옆에 들러리 서는 처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독립전쟁의 제단에 바친 순국지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한 백범 김구의 통일을 향한 노력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저주에는 역부족이었으며 그렇게 백범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총탄에 생을 마감하며 독립전쟁 최고이자 최후의 애국자로서의 대서사를 완성하고 삼천만 민족의 심장에 그의 이름을 영원히 새겼다.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 또는 1:29:300의 법칙에 따르는 참사와 마찬가지로 거친 외교, 전쟁의 참상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조짐과 기만 그리고 내분과 갈등을 악용하는 내전에 버금가는 준비와 공격이 먼저 가해지는 반간계와 흑색선전 그리고 지록위마라고 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감성적 자기 연민으로 소탐대실하는 군중을 양산하며 궁극적으로 사회전반에 프락치를 심어두어 전쟁이 개시되면 이 프락치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전쟁수행의지를 미리 꺾어두고자 북측은 일관되고 치밀한 준비를 이미 마치고 1950년 6월의 D-day만 기다리고 있었다.
프락치 fraktsiya 란 러시아어로 특수한 사명을 띠고 어떤 조직이나 분야에 들어가 본래의 신분을 속이고 몰래 활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이 제정되면서 남로당은 그동안 불법파업과 폭동이라는 불법화된 투쟁이 실정법에 막히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국가기관에 침투하여 남한정부를 뒤집는 법테두리 안에서의 공작을 통한 대한민국 흔들기가 시작되었다.
북로당의 성시백과 남로당 이삼혁 박시현 등이 경쟁적으로 국회부의장 김약수를 비롯한 국회의원 62명을 포섭하여 미군철수 결의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등 의 반국가 프락치 공작을 하였다는 김호일 총경의 수사와 오제도 검사의 기소로 세상에 드러나 재판에서 징역 10년의 중형이 선고되었고 복역하다가 6.25 전쟁 후 모두 월북하였다가 모조리 반당분자로 몰려 숙청된 국회 프락치 사건은 건국초 신생 대한민국을 뿌리째 흔든 충격적인 사건이자 이후 진행되어 아직도 끝나지 않는 한반도 백 년 전쟁사의 전형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1949년 6월 30일 미군철수가 완료되고 미 군사고문단 수백 명과 함께 남북한 군대는 38선에서 대치하였으나 공산화된 중공과 북한의 실제적 지배자 소련군을 등에 업은 강력한 북한군에 비해 애치슨라인까지 긋고 한반도를 핵심안보라인에서 제외한 미국의 실책까지 겹치면서 곤경에 처한 대한민국에게는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함께 기만전술로 무장된 북한의 대대적 평화 메시지가 더불어 달려드는 운명의 1950년은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