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윤 해 록] 백년전쟁 15, 교착膠着,1950

by 윤해


싸움은 선빵과 카운터 블로간의 기세와 저력으로 판가름 난다.


손자병법에서는 물론 싸우기 전에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부지피이지기不知彼而知己 일승일부一勝一負 부지피부지기不知彼不知己 매전필태每戰必殆 ,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 적을 모르되 나를 알면 한번 이기고 한 번은 진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움마다 반드시 위태로워진다 라면서 지피지기知彼知己 병법의 요체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무엇을 안다는 것은 오로지 내가 모른다는 것 만을 알 수 있다는 무지의 지를 평생 설파하고 죽어간 테스형의 말씀처럼 앎은 암처럼 알 수도 없고 알쏭달쏭한 살얼음이 녹는 경계면과 같이 애매모호함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나라 간의 싸움인 전쟁은 늘 위태롭다. 지피지기知彼知己도 부지피이지기不知彼而知己도 부지피부지기不知彼不知己라는 손자병법의 ABC마저도 나름의 어설픈 계산과 확고한 욕심으로 버무려 놓고 외세에 기대어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매국괴뢰세력의 오판으로 국토는 유린되고 민족은 인민과 국민으로 나뉘어 그야말로 피 터지게 싸웠다.


반도는 늘 대륙의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 중국대륙의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의 후방 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을 톡톡이 제공했던 북한은 중국공산당이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몰아내면서 중국대륙이 적화되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도 마오쩌둥처럼 한반도를 적화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 스탈린을 설득했고 미국과 직접 전쟁하기를 꺼려했으나 동유럽을 먹으려던 스탈린의 복심 때문에 미국을 동아시아에 묶어둘 필요가 있었던 그는 중공의 참전약속을 전제로 한국전쟁을 허락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에게는 동족상잔의 비극 그 자체이지만 세계패권질서라는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 한민족은 그저 스탈린이 두는 장기판의 말에 불과했다. 스탈린의 필요에 의해 시작된 한국전쟁의 중대한 고비고비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소련의 태도와 소극적인 지원은 완승도 완패도 없는 지루한 소모전으로 한국전쟁을 몰고 갔으며 장기판의 반상을 주도한 스탈린의 의도대로 밀고 밀리면서 한반도 종축을 중심으로 남북한이 선빵과 카운터블로를 교환하면서 미군과 유엔군뿐만 아니라 중공군과 소련공군까지 참전하는 국제전으로 비화하고 있었다.


초반 기세로써 낙동강까지 밀어붙인 북한군은 서울점령 후 3일간의 미스터리에 이어 북한군의 최정예 사단인 방호산의 6사단이 김포 천안 온양 군산 이리 남원 구례 광주 목포 등 전라도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개전 한 달 만인 7월 27일 하동전투를 거쳐 진주까지 점령하고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로서 전쟁물자와 전투병 보급의 교두보 부산 함락이 임박하였음에도 진주에서 며칠간 지체하여 결과적으로 마산을 중심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국군과 유엔군으로서는 소중한 반격의 시간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일본 규슈의 이다즈께 기지에 제5공군 전진사령부(Advance Echelon)를 설치한 파트릿지 장군은 한국에서 수행되는 모든 전술항공작전을 지휘통제하다가 미 제8군 사령부가 대구로 이동하자 이다즈께 기지에 설치했던 전진사령부를 대구로 이동했다. 대구에 설치한 이 미 제5공군 전진사령부(Advance Echelon)의 활약에 힘입어 미 8군 워크사령관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함으로써 전선戰線은 간신히 교착膠着되었고 대한민국은 멸망의 순간에 기적적으로 기사회생한 것이다.


제공권을 장악한 대구의 미 제5공군이 낙동강 방어선 이북의 북한군에게 압도적 폭격을 가함으로써 보급로와 병참선을 끊고 북한군의 선제공격의 예봉을 무디게 하여 인민군의 기세를 꺾고 국군과 유엔군이 저력의 카운터 블로를 날리며 반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08년 1월생은 피난 토굴에서 은거하면서 왜 이 나라가 이 지경에 처했는 가를 꼽씹어 보았다. 1932년 무장독립전쟁의 서막을 열고 장렬히 전사한 1908년 6월생 매헌의 숭고한 순국정신과 함께 이승만의 외교에 의한 독립운동의 성과로 일본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킨 결과 천행으로 광복에 이르렀고 해방공간의 혼란을 잠재우고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 대한민국 건국까지는 성공했지만 무장독립전쟁의 한 축을 담당한 소비에트가 지원한 볼셰비키 이념으로 무장한 공산적화세력의 침략을 막기에는 외교전문가 이승만이 이끄는 신생 대한민국의 전쟁 억지력은 미약했고 국방라인의 인사는 한심했으며 지피지기知彼知己하지 못하고 부지피부지기不知彼不知己하며 마주친 북한군과 국군간의 전투는 아군의 매전필패每戰必殆였으며 전장에 놓인 국민들의 상황은 참혹 그 자체였다.


토굴 속에서 꼽씹어본 대한민국은 태어나자마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릴 운명에 처해 있다는 탄식과 함께 1908년 1월생 자신도 내일의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깜깜한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윤 해 록] 백년전쟁 14, 파종播種 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