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播種의 의미는 논밭에 곡식穀食의 씨앗을 뿌리고 심는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2025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과 분열의 뿌리는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누구는 궁금해하고, 누구는 확신에 찬 진단을 내어 놓기도 하고, 누구는 알 수 없는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기도 한다.
거악의 일제에 대해 독립전쟁이라는 선전포고를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엄청난 힘의 불균형을 절감하고 어떠한 세력과도 손을 잡을 가능성을 모조리 열어 놓은 결과 마치 선물처럼 찾아온 광복 이후 해방공간에서 극심한 분열과 혼란을 마주했고 남북분단은 현실화되었다.
대화와 타협까지도 통일전선전략이라는 허울로 포장하기 바빴던 매국괴뢰세력이 도발한 6.25 전쟁은 비록 조국해방전쟁의 가면을 쓰고 한민족을 전쟁의 재앙으로 몰고 갔지만 보다 더 심각하고 지속적인 재앙은 북한에서 차출한 인만 의용군 뿐만 아니라 6.25 남침으로 적화된 남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강제로 차출된 인민 의용군의 운명이었다.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의 압권은 패전하고 점령된 지역에 남겨진 적국의 병력자원을 회유하고 협박하여 총알받이 삼아 곧바로 저항하는 적국의 군대로 돌진시켜 소모시키는 전쟁의 공식이 너무나 처참하며 지속적이라는 점이다.
6.25 전쟁 최대격전지 낙동강 전선으로 내몰린 인민 의용군은 밀고 밀리는 처절한 공방전 끝에 대부분 소모되고 사라졌지만 대한민국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대한민국 멸망의 끝까지 몰아붙혔던 그들의 행위는 비록 강압에 의해 끌려 나왔다고 할지라도 대한민국이 패망하지 않는 한 두고두고 오랫동안 가족과 자손들까지 연좌제라고 하는 올가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비록 낙동강 전선에서 인민 의용군은 총알받이로써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지만 적화된 곳에 살았던 인민 의용군의 가족 친지 수백만명의 피눈물은 씨앗이 되고 연좌제라는 거름을 만나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은 분단된 대한민국이라는 갈라진 논바닥, 황폐해진 밭에 파종播種된 사분오열된 분열이라고 하는 씨앗이 대한민국 번영의 독사과로 열려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오늘날 2025년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번영된 대한민국이라는 둥지 속에 탁란 하여 뻐꾸기 둥지로 날아가는 뻐꾸기처럼 입법 사법 언론 카르텔을 구축하여 공고화하고 대한민국을 숙주 삼아 암약하면서 지록위마의 선동을 통해 무한증식하는 암세포처럼 대한민국 정부체제를 마비시키고 무력화하는 반민족 매국괴뢰세력의 뿌리 깊은 원형이 1950년 파종되어 남한에서 버림받고 북한에게 이용당해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인민군을 대신하여 총알받이가 된 남한출신 인민 의용군과 남로당 계열의 지리산 빨치산 남부군의 피눈물 나는 원혼이 질기게 살아남아 대한민국 위기의 순간 벌떼같이 나타나는 그들의 한풀이 앞에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은 나만의 상상일까? 궁금해진다.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 결사항전을 위해 파놓은 토굴 속에서 북한에 함락된 수도 서울의 학살과 납북을 피해 토굴에 은거하고 있던 1908년 1월생에게는 광복의 그날도 해방공간의 혼란도 마치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민족의 비극 앞에 생사마저 담보하기 어려운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처지와 동갑내기 1908년 6월생 매헌이 1932년 독립전쟁에서 죽을 자리를 찾아 홍커우 공원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갈 때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음을 절감하고 있었다.
낙동강은 1950년 그해 여름 국군과 인민군 인민의용군과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들이 흘린 피로 강을 이루고 그 핏빛으로 물든 낙동강 1300리 물결은 적과 전우를 나누는 시발점이 되어 한반도 백년전쟁의 화수분禍水盆이 되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성장과 번영에도 무색하게 비극의 씨앗을 국민들에게 뿌리며 한민족의 가슴에 파종되어 국론분열의 결정적인 방아쇠가 되어 단합하지 못하고 흩어지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비극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