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戰友는 어떤 친구일까? 동시대를 사노라면 수많은 벗들이 명멸한다. 죽고 못 살 것처럼 살가운 친구도, 꿈에 나타날까 두려운 친구도 선한 덕과 악한 업이 교차되고 섞이며 증발하는 죽마고우竹馬故友부터 동문수학 했던 학우學友 그리고 신의로 교유했던 붕우朋友마저 무자비하게 흐르는 시간 앞에 굴복하여 세월이 지나면 인연의 강에 벗을 흘려보내는 것이 우정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
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에서 산화한 전우를 잃은 슬픔을 담아낸 노래, ‘전우야 잘 자라’는 한반도 백년전쟁의 최대 비극인 동족상잔의 6.25가 만들어낸 비장한 친구, 전우의 탄생을 노래한 진중가요이자 군대시절 즐겨 부르던 군가였다.
평시에 소를 키우고 밭을 가는 누군가가 사람이듯이, 전시에 전쟁을 수행하는 누군가도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인류의 수많은 전사에서 최종적이고 결정적 승리는 군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우라고 부르는 사람에 의해서 쟁취된다.
이처럼 전장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관건은 무명용사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자발적인 전우애이다. 전우애는 승부뿐만 아니라 생사도 결정짓고 심지어 생사를 초월하는 비장하고 자발적인 의식이며 이 의식이 저절로 그 군대를 타고 흐를 때 그 부대는 천하무적의 군대가 되는 것이다.
싸우지 않고 망국한 망국의 한을 독립전쟁에 바치고, 전우 한 명 없이 홀로 단기필마의 한 마리 말도 없이 일제라고 하는 거악의 전차를 가로막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마귀가 전차를 뒤집어 치우는 것처럼 불가능에 도전한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의 의거를 완수해 낸 1908년 6월생 매헌 윤봉길 의사의 옆에는 비록 그 자리에 함께 있지는 못했지만 1908년 1월생과 같은 동갑내기 전우가 식민지 조선에서 일제 심장부로 들어가 지일하고 극일 하며 자강 하면서 일제를 상대로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전우애로 뭉친 전우가 있었다는 사실만이라도 알고 순국했다면 매헌이 가는 길이 비록 형극의 길이라 했더라도 가슴속에 매화꽃 향기 가득 머금고 이승을 하직했을 것이다.
팽팽한 힘의 균형이 1300리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처절한 혈투를 계속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계속되는 전장에서 죽어나가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시체 옆에는 그래도 내 뒤를 지키고 내 옆을 지키는 동료 전우가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1950년 그해 여름 피아彼我간에 지옥처럼 서로를 불살랐던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 낙동강방어선에서 한여름밤의 불꽃같이 서로를 지켜주었던 전우는 다 어디 가고 2025년 풍요의 천국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날 선 비수를 등 뒤에 꼽고 배신을 밥먹듯이 하며 배금사상에 물든 매국기득권 법꾸라지 적폐세력들이 보여주는 실종된 양심과 삐뚤어지고 뻔뻔한 매국괴뢰세력들의 작태는 1950년 그해 여름 이미 낙동강 오리알처럼 강 속 깊이 가라앉아 사라진 지 오래된 줄 알았는데 2025년 한겨울 질기게 되살아나서 대한민국의 약한 고리를 붙잡고 한반도 백년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스스로 웅변한다.
한국을 미국보다 사랑해서 목숨까지 바친 진정한 전우戰友, 워커장군과 미군 그리고 유엔군과 같은 전우가 있어 매헌보다는 외롭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그해 여름의 낙동강 방어선에서 대한민국 국군이 거둔 최고의 승리는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냈다는 눈에 보이는 승리 뿐만 아니라 미군과 한국군 나아가 유엔군과 한국군 사이에서 뭉게뭉게 피어났던 보이지는 않았지만 미래 대한민국의 번영을 불러오리라 짐작도 못했던 눈에 보이지 않았던 승리, 즉 전우戰友라는 존재와 함께 피로 맺은 전우애戰友愛의 탄생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