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해 록] 백년전쟁 56, 체제전쟁 1956

by 윤해




역사에서 거시사와 미시사가 결이 다르듯이 외교와 정치는 붙어 다니기도 떨어져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때그때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국가의 지도자가 국가를 다스리는 요체는 내우외환의 격변하는 대내외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하면 국익을 도모하고 가치를 수호하여 국민들의 생활과 정신의 고양과 평안을 가져올까 밤낮으로 고민하는 모든 행위가 모여진 것이 외교와 정치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거시사와 미시사가 어우러져 돌아가듯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정치와 외교가 함께 버무려져 돌아간다.

독립전쟁,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일상의 외교와 거친 외교라고 하는 강온외교를 모두 섭렵하고 단련하며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시대의 적임자임을 분명히 했던 우남에게도 국내로 들어오면 외교라는 분야와는 결이 다른 정치적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었다.

1908년 1월생은 경성제대 법문학부 2년 선배 유진오가 우남과 치열한 논쟁 끝에 마련한 제헌헌법이 한국전쟁 전후 어수선한 정국에서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으로 국민직선제를 통한 우남의 종신집권을 열어 둔 1956년 정 부통령 선거에서도 팔순이 넘은 우남이 그의 경쟁자 신익희가 급서함으로써 30%를 득표한 진보당의 조봉암을 무난히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의 장면이 여당후보 이기붕에 20만 표 차이로 신승하여 부통령에 당선되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투표권으로 한국정치가 기능하고 있음을 새삼 느끼면서 앞으로 일어날 정치적 파란에 대해 내심 불안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며 우남의 3선을 저지하려 했던 야당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고 격렬한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은 대통령 선거에서 무효표 투쟁까지 불러일으켜 200만 표가 넘는 해공 신익희를 추모하는 무효표가 쏟아졌고 야당은 부통령 후보 장면이 당선되는 것으로 절반의 승리를 가져왔다.

1956년 정 부통령 선거는 여당 야당을 떠나 야당도 포용치 않았던 진보계열의 조봉암 후보가 30%를 득표하자 또다시 사상논쟁과 북한개입 그리고 부정선거로 한 해가 떠들썩하게 흘러갔고 선거에서 불거지고 파종된 이 세 가지 문제는 2025년 오늘날까지 선거철의 단골이슈로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즈음 북한도 종파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1956년 8월 북한 김일성의 동유럽 순방 중에 소련파와 연안파는 손을 잡고 김일성 실각을 도모하다가 급거 귀국한 김일성은 갑산파의 도움을 받아 이들의 씨를 말리고 뒤이어 서서히 갑산파를 제거함으로써 북한은 만주 빨치산파가 득세하는 김일성 독재를 출발시킨 원년이 1956년이다.

분열과 혼란은 전쟁을 불러오고 불러온 전쟁에서 애꿎은 젊은 피만 강토를 적시고 휴전과 정전을 통해 남북한 모두에서 분단 보다도 더 강고하게 독재는 자리 잡고 통일 대신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체제전쟁은 무한투쟁을 넘어 초한전이라는 길고 지루하며 무지막지한 전쟁 속으로 삼천만 동포를 밀어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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