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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68, 헌장憲章 1968

by 윤해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制定되었다.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이 반포頒布되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시작되는 우남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제헌헌법 이후 20년이 흐른 1968년 12월 5일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과 만났다.

대한민국은 국가와 국민 그리고 영토로 이루어져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 당연한 말이 어떻게 지켜지는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에 따라 인류문명이 만들어낸 구체적이기도 하며 추상적이기도 한 국가라고 하는 실체의 강약과 허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제헌헌법의 제정으로 망국과 독립전쟁 이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모호한 개념이 구체적인 형태로 정해졌다고 한다면 1968년 12월 5일 반포된 국민교육헌장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모호한 존재를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누어 반포했다.

한반도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국토가 반으로 잘려 남한이라고 하는 영토에 갇혀버린 세계패권질서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서도 분단은 우리가 더 이상 어찌해 볼 수 없는 고정상수가 되어가고 있었고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모호한 개념의 국가를 어떻게 하면 구체적 모습으로 정하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모호한 존재를 어떻게 하면 구체적 모습으로 탈바꿈시키는 가가 부국강병의 요체요 강대국과 약소국뿐만 아니라 국가라고 하는 추상적 공동체이자 결사체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국가는 전쟁으로도 무너지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내부 분열로 무너진다. 엄밀히 말하면 국가는 국민으로 이루어지고 여기서 말하는 국민은 대부분 민족을 포함하지만 국민의 단결성과 확장성은 가치를 공유하는 모습으로 구현된다.

1968년은 냉전시대 중 세계적으로 사건이 많았던 해였다. 베트남 전쟁이 구정 공세로 치열해 짐에 따라 미국의 반전 열풍 역시 절정을 이루었고, 프랑스에서는 청년들의 기성사회에 대한 불만과 경제 침체 등 복합적 사회문제까지 겹치며 그 유명한 68 운동이 발생했고 중공에서는 문화 대혁명의 광풍으로 홍위병의 테러가 극에 도달했고 중소분쟁이 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달았으며 미국에서는 존슨 대통령의 후반 임기 하에서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4월에, 암살당한 전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동생이자 민주당의 거물 진보 정치인 로버트 F. 케네디가 6월에 암살되는 등 사회, 정치적으로 어수선하고 불안정한 한 해였다

이처럼 1968년은 대한민국 대내외로 격동의 한해였다. 북한은 이 어수선한 틈을 노려 1월에 김신조의 남파 공작원 일당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 목적으로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태, 이틀 뒤 동해에서 미국의 정보 함인 푸에블로호를 피랍한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그리고 그해 10월에 사흘간 무장공비들이 연달아 침투한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대응하여 1968년 4월 1일 향토 예비군이 창설되었으며 11월 5일 침묵하는 다수의 지지 Silent Majority를 받은 공화당의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1월 21일 주민등록증이 최초로 발급되었다. 가히 한국전쟁이 재현되는 듯한 공포와 긴장의 한 해였다.

1908년 1월생은 요동치는 1968년 국제정세 속에서도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눈물바다로 만든 최빈국 대통령의 연설에 마음이 움직인 서독총리가 내어준 차관으로 2월 1일 경부고속도로 기공식이 열렸고, 4월 1일 포항종합제철이 건립되는 것을 보면서 드디어 국토의 혈맥이 뚫리고 산업화의 쌀과 같은 철을 만들 포항종합제철의 힘찬 출발을 보면서 오천 년 가난을 물리치고 대한민국 번영을 약속했던 박정희의 염원이 하나하나 실현되는 것과 동시에 격화되는 북한의 무력대남 도발이 거의 전쟁 수준으로 치닫는 현실 앞에서 안일하고 낙관적인 평화보다도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온 국민의 각오가 더욱더 절실해 보였다.

이렇게 숨 가쁘게 달려온 전직 군인이기도 했지만 망국의 식민지 청년 시절 문경보통학교 교사이기도 했던 박정희는 모호하고 복잡한 제헌헌법을 가지고 국민들을 일치단결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 느끼며 국민 누구나 알기 쉽고 생활 속에 체득하며 우리가 나아갈 바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대한민국의 번영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말과 글이라는 문명의 힘을 확신하면서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을 반포하고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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