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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69, 369게임 1969

by 윤해


369게임은 지켜보면 쉬워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규칙에 맞추어 따라 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할 때마다 번번이 틀려 인디언밥이나 벌주 같은 벌칙을 받아야 할 정도로 반드시 틀릴 수밖에 없는 손뼉소리가 박자에 맞게 이어지는 네버엔딩게임이 아닌 엇박자로 수시로 끊기는 엔딩게임의 반복이다.

손과 입과 머리, 도구와 말과 생각이 삼위일체가 될 때 우리는 369게임에서 버틸 수 있으며 369게임의 규칙은 손뼉과 구호가 뇌가 내리는 판단에 따라 혼연일체가 될 때 게임 참가자들의 손뼉소리가 끊기지 않는 것이다.

나나 나라도 369게임과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계속할 때 손뼉이나 박수를 받으면서 출발하고 지속하고 싶은 때가 있다. 나라고 하는 한 개인은 태어나서 처음 30년이라는 한 세대를 살아낸 다음 느끼는 감회가 남 다를 것이며 또 다른 한세대, 60년을 향할 때는 뭔가 특별하고도 남다른 각오로 출발하며 마지막 30년, 90을 바라보는 삶은 누구나 아무에게나 쉽게 허락되는 삶은 아니다.

1917년 11월생 박정희가 망국의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서 30년이 지나고 새로운 30년이 시작되던 해인 1948년에 건국된 대한민국이 전쟁의 참화를 거치고 민주화의 파도를 넘나드는 동안 죽음에서 살아 나오고 와신상담하면서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고 산업화를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건설하여 미래세대에게는 다시는 자신과 같은 망국의 식민지 백성의 설움도, 파독 광부나 간호사와 같은 날품도, 파병된 젊은 청년의 피값도 팔지 않는 오천 년 가난이라는 민족적 결핍을 반드시 해소해야 하겠다는 결기와 의지로 충만했던 한 사람의 지도자가 1969년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었다.

1948년 우남과 함께 제헌헌법을 만든 1969년의 야당 신민당 당수 유진오가 바라본 박정희는 쿠데타로 제헌헌법의 가장 소중한 가치 자유 민주주의를 파괴한 인물이기도 했고,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하는 양면적 인물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1969년 박정희가 3선 개헌을 들고 나왔을 때 유진오를 비롯한 야당의 필사적 저항으로 정국은 또 한 번 소용돌이치며 몸살을 앓고 있었다. 스스로 민주화의 제물이 되어 사라져 간 우남과도 제헌헌법 제정 당시부터 대통령 중심제의 폐단을 들어 의원내각제 주장으로 우남과 격렬한 다툼이 있었던 유진오는 독재로 달려가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만은 반드시 막아야 할 지상과제로 보고 거당적이고 거국적인 개헌반대 세력, 민주화세력을 결집하고 동원했다.

1908년 1월생은 마치 인생에 369게임이 존재하는 것처럼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한 1908년 6월생 매헌이 가지 못했던 30년 그리고 60년 환갑을 넘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90년을 향한 진갑이 시작되는 1969년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동향의 10년 후배 박정희의 산업화 세력을 가로막아선 자신과 함께 동문수학한 경성제대 법문학부 출신의 유진오의 민주화세력의 움직임이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 캠퍼스는 물론 정국을 급속하게 혼란에 빠뜨리고 있음을 목격하면서 대한민국에서 민주화라고 하는 자유의 가치와 산업화라고 하는 빵의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새로운 한반도 백년전쟁, 체제전쟁의 불씨가 서서히 지펴지고 있음을 불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1969년은 미국에 의해 인류가 최초로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고 세계최초의 인터넷을 탄생시키는 등 과학기술 방면에서 엄청난 성과가 있었고 1월 20일 리처드 닉슨이 미국 3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그해 7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에서 앞으로 아시아권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으며 각 국가의 문제는 직접 해결해야 할 것이라는 선언으로, 베트남 전쟁의 포기 선언과 마찬가지이다. 이를 토대로 70년대에는 냉전의 와중에도 데탕트의 시대가 열리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격동하는 세계패권질서는 이처럼 팽창과 수축 그리고 이합집산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3선 개헌으로 시작된 69년의 대한민국은 폭주하는 기관차 마냥 앞으로 달려 나가는 박정희의 산업화세력이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계몽시킨 국민들에게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통해 3선 개헌을 이루어 내었고 유진오를 비롯한 야당과 대학생들은 아스팔트 위에서 민주화 세력의 몰락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었다.

나와 나라가 369게임에 들어가 혼연일체가 되어 손뼉과 박수가 계속되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만은 3선 개헌으로 산업화와 민주화세력이 격돌한 69년은 손뼉에 이은 박수, 박수에 이은 갈채로 가득 찬 네버엔딩 대한민국이 아니라 한반도 백년전쟁으로 헌법이 부정되고 독재가 어른거리며 분열하고 대립하는 2025년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처럼 손뼉과 박수소리가 사라진 엔딩게임 369게임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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