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과維新과 혁명革命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함이라는 유신의 의미는 모든 것을 갈아엎는 급진적인 혁명에 비교하면 다소 온건하다. 대체로 권력을 찬탈하는 쿠데타를 미화할 때 혁명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반면에 유신은 권력의 변동은 미미하게 내부적 모순을 극복하고 제도의 변화를 통해 국가를 쇄신하고자 하는 권력자의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1976년은 천년의 적 중국의 격변기였다. 통일을 눈앞에 두고 처절한 후퇴를 해야 했던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참전의 결정권자, 마오쩌둥은 스탈린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는 수백만 동포를 참혹한 전쟁에 희생시키고도 적수공권으로 휴전하게 만든 장본인이자 6.25 전쟁의 전범이다. 그랬던 그가 1976년 9월 9일 사망함으로써 중국대륙을 공포로 몰아넣고 퇴보시킨 거대한 체제실험으로 1966년 시작된 문화 대혁명의 10년 광기가 마침내 끝났다.
야만보다는 문화가 좋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고 반동보다는 혁명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말이 그렇지 뜻이 그러느냐는 희대의 독재자 마오쩌둥은 1958년에 시작한 대약진운동으로 수천만을 굶겨 죽인 것도 모자라 1966년 문화 대혁명이라는 친위쿠데타를 통해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조족지혈로 돌리는 홍위병의 광기에 영합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한세대를 거의 지워버렸다. 그나마 8개월 먼저 사망한 풍운아 저우언라이 총리로 인해 파국을 면한 중국은 마오쩌둥 사후에 덩샤오핑이 세 번째 복귀를 시작하면서 안정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처럼 60년대에서 70년대 중반까지 계속 혼란 속에 빠져있던 중국대륙과 달리 대한민국은 4.19 의거 5.16 혁명이라는 파고를 넘어 6,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산업구조를 중화학 공업으로 갈아타면서 5천 년 가난과 패배의식에서 깨어나서 하면 된다는 새마을 정신으로 잠자는 거인 중국의 혼란을 뒤로하고 박정희는 유신을 통해 혁명을 마무리하여 천년의 적 중국을 멀찌감치 밀어내고 백 년의 적 일본의 뒤를 맹렬히 추격하면서 일본과는 격차를 줄이고 선진국으로 가는 마지막 티켓을 손에 쥔 것을 그 당시 누구도 알지 못했고 오로지 후대에게 번영된 나라를 물려주고자 했던 수많은 식민지 청년들의 염원이 모이고 모인 결과가 유신 정국하의 강력한 개발독재였다.
1908년 1월생은 망국으로 열린 대륙이 건국과 동시에 닫히고 6.25 전쟁을 통해 완전히 차단된 155마일 휴전선에 가로막힌 섬이 아닌 섬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이 드디어 세계 패권질서에서 해양세력의 교두보가 되어 자신과 같이 식민지에서 태어나 자라고 자강하고 실력을 키운 식민지 청년들의 의거와 혁명 그리고 유신이 결국 대한민국의 번영을 이끌 삼두마차였음을 1976년 똑똑히 목격했다.
대한민국은 해양세력의 첨병으로서 우남에 의해 민주제를 이식받은 산업화 이전에 민주화를 한 드문 국가였고 이식된 민주제는 비록 산업화를 위한 개발독재가 서슬 퍼렇게 작동되는 순간에도 먼저 자리 잡은 민주화로 인해 본말이 전도되어 독재자가 군주가 되는 도로군주제로의 회귀는 어려운 나라가 이미 되어 있었고 산업화와 함께 우남이 이식한 민주화도 온 국민들의 가슴에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살아 숨 쉬고 있었다.
1976년 1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포항 영일만서 석유를 발견해 매장량을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1월 26일 한국 자동차 독자모델 1호 현대 포니가 출시되었다. 3월 1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20명의 민주-재야인사들이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정권의 종식을 촉구하는 3.1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했다. 4월 1일 미국에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개인용 컴퓨터 제조업체 애플을 설립했다. 8월 1일 제21회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남자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양정모 선수가 건국 이후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8월 18일 북한이 판문점에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을 저질렀다. 10월 11일 전남 신안군 앞바다에서 중국 송나라 및 원나라 시대의 해저유물이 대량 인양되었다. 이에 따라 문공부 문화재관리국은 '신안해저유물 발굴조사단'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11월 2일 -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지미 카터가 당선되었다. 제럴드 포드는 남북 전쟁 이후 선거를 통해 당선된 적이 전혀 없는 유일의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지미 카터는 자신의 고향인 조지아주를 포함해 텍사스, 미시시피 등 남부 주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하며 텍사스, 미시시피, 앨라배마,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마지막으로 민주당이 이긴 선거였다. 12월 4일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이 경질되고, 후임 중앙정보부장으로 김재규가 임명되었다.
1976년 민주화가 저변에 깔려있던 대한민국은 의거와 혁명 그리고 유신까지 산업화를 향해 고속성장해 나가며 선진국으로 가는 최종차표를 거머쥐었지만 한 때 가장 오래 세계를 지배한 팍스 시니카 중국은 공산주의 이념에 경도된 독재자가 펼친 대약진운동에 이은 광기의 문화 대혁명을 통해 쇄국적이며 내재적 현안에 갇혀 결국 유신하지 못하고 이십여 년의 경제성장의 골든타임을 날려 버림으로써 대한민국은 자유진영의 일원으로 스스로 해양국가로 발돋움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기어이 오천 년 가난에서 헤어나는 상징과도 같은 산업화를 조기에 이루어냄으로써 통일을 방해한 한국전쟁의 전범 마오쩌둥이 이승을 등지기 전에 분단의 책임을 묻고 심판하여 체제전쟁에서 승리하고 설욕할 수 있었던 해가 1976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