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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86, 챌린지 1986

by 윤해


문명은 말과 글로 만든 가상세계의 언어를 가지고 행동을 통해 구체화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 한다면 그렇게 만든 세상의 행동들을 모아서 다시 말과 글로 기록한 역사는 아널드 토인비의 말처럼 도전과 응전 challenge and response의 기록이다.

이처럼 추상을 구상으로 구상을 추상으로 바꾸는 지난한 작업이 문명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의 역사인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도전 challenge 이 있어야 시작되고 출발한다. 1986년은 1월 28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 기지에서 NASA 우주왕복선 챌린저가 STS-51-L 미션을 시작했으나, 발사 수십 초만에 고체 로켓 부스터의 이상으로 폭발해 탑승한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로 시작되었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 challenge인 챌린저 challenge호가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발사 후 2분 만에 폭발하여 잔해가 녹아내리는 장면에서 미지의 목표에 대한 도전 challenge이 얼마나 지난하며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가를 다시 한번 뒤돌아 보게 한 참극이었다.

체육관선거에서 당선된 골키퍼 출신의 신군부 전두환의 7년 임기가 끝나갈 무렵 유신보다 더한 철권통치를 이어가던 5공은 국내외적으로 피플 파워에 의한 민주화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필리핀에서는 20년 간 필리핀을 철권통치한 마르코스에 의한 경제 쇠락과 부정부패, 횡령, 독재, 사치,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한 불만이 터져 임기 후반엔 '피플 파워'라는 대규모 시위에 의해 마르코스 일가는 2월 25일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국내에서도 학계 노동계 종교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시국선언을 통해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도전 challenge이 본격화된 해가 1986년이었다.

1986년은 아시안 게임이 열리는 해였고 2년 뒤 88 올림픽을 앞둔 해로서 대한민국으로서는 국가의 명운을 바꿀 수 있는 중차대한 시기였다. 자칫 잘못하면 잔치상에 잿밥 뿌릴 수도 있는 도전이 계속되었고 정부는 늘 그랬듯이 초강경 모드로 응전했다.

1908년 1월생은 숨 가쁘게 달려온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야만 하는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음을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망국의 식민지 청년으로 태어나 20대 초반에 대학교수가 되는 소년등과少年登科를 했지만 1908년 6월생 매헌과 같은 동갑내기들이 만주로 중국으로 독립전쟁에 뛰어들 무렵 자신은 식민지 조선에 남아 조선어 문학과를 졸업하고 강단에서 우리말 우리 글을 지키기 위해 신명을 다해 자강하고 실력을 길러 후학들을 가르치며 함흥에서 경성으로 서울에서 고향으로 전쟁의 참화를 피하면서도 후대를 가르치며 후일을 도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중년상처中年喪妻를 하면서 인생사 두 가지 불행을 온몸으로 감당해 내고 마지막 남은 한 가지 불행, 노년 궁핍老年窮乏에서 헤어나기 위해 오천 년 가난을 떨쳐내야 했던 대한민국과 함께 달려온 퇴임 후의 몸부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이제는 늙고 병들어 고목 같은 노구에서 흘러나오리라 짐작도 못한 눈물이 펑펑 쏟아짐에 적잖이 당황해하고 있었다.

1986년 1월 1일 전두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거국일치의 확고한 결의로 통일과 선진의 길에 함께 나서자고 강조하였다. 북한의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남한 측에 군사훈련 중지와 3자 회담 수락을 촉구하였다. 1월 23일 보이저 2호가 천왕성의 위성인 비앙카를 발견했다. 1월 24일 보이저 2호가 최초로 천왕성의 사진을 촬영하여 지구로 전송했다. 2월 24일 전두환 대통령은 3 당회 담을 열어 "1989년에 국민의 의사에 따라 개헌이 가능하다."라고 언급했다. 3월 1일 전두환 대통령은 삼일절 경축사에서 남북한최고책임자회담 연내 실현 기대를 밝혔다.
내무부는 '주민전산화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사상 첫 동계 아시안 게임을 일본 삿포로시 마코마나이 실내 경기장에서 1986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125개 성당에서 시국기도회를 개최되었다. 4월 4일 서재필 의사 유품 5,600여 점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독립기념관에 도착하였다. 4월 26일 소련 우크라이나 SSR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실험 중 원자로 화재로 폭발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

7월 28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을 발표하며 당해 안에 아프간 주둔 소련군을 철수시키는 한편, 태평양 국가와의 경제관계를 증진하기로 했다. 반대하며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관을 점거 농성하였다. 9월 18일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북한 측에 1988 서울올림픽 2개 종목 수용을 촉구하였다. 9월 20일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개막식이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10월 5일 한국 축구 대표팀이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물리치고 통산 3번째 금메달을 땄다. 1986 서울 아시안게임 폐막식이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한국 선수단이 동 대회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하였다. 10월 14일 유성환 신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우리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라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유성환 국시론 파동) 11월 5일 김대중 신민당 상임고문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전제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2월 15일'평화의 댐 건설지원 범국민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12월 16일 경기 연천군 전곡리에서 12~30만 년 전 구석기 주먹도끼가 온전한 형태로 출토되었다. 12월 25일 북한 측은 <금강산발전소 건설에 관한 백서>를 발표했다. 12월 28일 북한 평양 ~ 소련 모스크바 간 철도가 개통되었다. 12월 30일 북한의 김일성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 고위 정치/군사회담'을 제의했다.

1986년은 대한민국이 그동안 도전과 응전 challenge and response을 통해 한 시대를 결산하는 역사적 전환기였다. 망국과 독립 건국과 전쟁 그리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통해 이제는 세계만방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번영을 드러내어도 조금의 손색이 없는 모습으로 80년 가까이를 한국민의 희생과 노력 그리고 피와 땀이 응집되어 수많은 시련과 아픔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저력의 결정판을 벼르고 만들어 다가올 평화의 제전 88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우선은 86 아시안 게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타협하고 협치 해야 하였으며 그 당시 신군부도 야권도 오천 년 만의 가난에서 벗어나서 차린 잔치상이자 88 올림픽의 리허설 86 아시안 게임의 밥상을 들고 찰 정도의 바보가 되어 도전과 응전 challenge and response이라는 대한민국 역사의 기록에서 역사의 죄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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