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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87, 경계를 너머 1987

by 윤해


살아가면서 넘어가는 여기와 저기 이곳과 저곳의 경계가 죽어서 건너가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와 다른 점은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느냐 없느냐일 것이다.

1987년은 대망의 80년대 86 아시안 게임을 넘어 88 올림픽으로 가는 경계와 같은 해였으며 신군부 5 공화국 정권이 끝나고 또다시 체육관 선거로 다음 대통령을 뽑느냐 아니면 온 국민의 염원처럼 개헌을 해서 직선제 대통령을 뽑느냐라고 하는 국가의 중대사가 결정되는 길목이었고 경계로 달려간 한 해였다.

살면서 우리가 마주치는 실상의 경계는 우리가 상상하듯 뚜렷하고 굵은 한 줄 실선이 아니다. 겨우내 얼었던 개울물이 봄볕을 받아 물과 얼음 사이가 녹을지 말지를 반복하면서 물과 얼음이 공존하는 지점에서 찰방찰방하면서 만들어졌다 지워졌다를 반복하면서 생기는 살얼음 같은 경계, 즉 어디서 어디까지가 경계인 지도 모르는 수많은 경계를 살면서 경계에 서서 어쩔 줄 모르고 번민하고 방황하는 모습처럼 1987년은 대한민국 국민들 앞으로 다가왔다.

제5 공화국은 그렇게 평화적인 정권이양을 목표로 나름의 후계승계의 플랜도 완벽히 짜고 86 아시안 게임의 성공적 개최에 한 끗 고무되어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군부 7년 단임 정권은 위정자와 국민 사이에 굵고 진한 실선의 경계를 정하여 그들 만의 마이웨이를 외치며 7년 전에 그들이 했던 것처럼 국민들을 밀어붙이기로 작정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처럼 살면서 만나는 경계는 죽어서 건너가는 이승과 저승사이의 경계와는 비교할 수 없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비록 종이 한 장이고 찰나와 순간적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 결과는 천양지차이다.
일단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사람과는 다시는 만날 수 없다. 조금 전까지 보고 말하고 웃고 울며 화내고 화해했던 내 곁의 누군가를 다시는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난다는 현실은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설명도 조언도 해 줄 수 없는 불가지 영역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들을 대신하여 몇 마디라도 해줄 수 있는 역할은 온전히 산 자의 몫인 것이다.

1908년 1월생은 1987년 1월 말 그가 태어난 달에 생사의 경계를 넘었다. 망국에서 태어나 독립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이라는 5번의 전쟁을 겪고 파란만장한 20세기와 함께 팔십 평생을 보내면서 그가 겪은 숱한 생사의 위기에서도 결코 넘어보지 못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마침내 넘은 것이다. 지체된 정의가 정의가 아니듯이 지체된 죽음도 어쩌면 죽음이 아닌 듯 덤덤해진다. 그냥 여기서 저기로 발자국 하나를 옮긴 것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죽음을 경각에 두고 느낄 수 있었음은 한평생의 고된 삶이 역설적으로 죽음 앞에서는 축복이었음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1987년은 수많은 경계가 생겨나고 허물어지는 동이 트기 전에 겪어야만 하는 긴 새벽과도 같은 한 해였다.
1980년 이후 움추러들었던 한국 민주화 세력은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 호헌조치를 계기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아 쓰러지면서 데모는 격화되었고 데모에 회의적이던 직장인 등 중산층들도 데모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6월 29일에는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후보가 대통령 직선제 실시를 주요 골자로 6.29 선언으로 일약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하였다. 헌정사상 최초로 여야가 원만한 합의를 이룬 헌법 개정이 추진되어 직선제 개헌과 함께 대통령 임기를 단임 5년 고정, 국민 기본권을 대폭 개선한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담아 10월 1987년 국민투표가 93.1%의 찬성률로 통과되어 현재의 대한민국 제6공화국으로 이어졌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군사정권인 박정희, 전두환 시대까지 40년 가까이 지속된 권위주의 체제는 1987년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이듬해에 한국의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순조롭게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는 지금 그 87 헌법 체제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 권위주의 체제의 권위가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었고 그냥 해체된 것도 아니다. 20세기 수많은 전쟁 속에서 경계를 넘고 죽어간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권위주의 체제가 유지되기도 해체되기도 하였으며 그 제도는 국가의 흥망성쇠가 경각에 달려 있다는 공동체의 함의가 모아지지 않는 다면 유지될 수도 해체될 수도 없는 임계점이 존재한다. 87 체제는 그렇게 탄생했다. 물론 그 체제의 탄생에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와 희생이 수반되었다.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투신하고 분신하고 소신한 숭고한 희생의 토대 위에 역사는 임계점을 지나 경계를 넘어가면서 겨우 한걸음 씩 전진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변곡점과 전환기에 스스로 도취되어 과거를 지금이 있게 한 토대로 보지 않고 타도해야 할 악으로 단순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기초가 부실한 부지 위에 세운 건물이 바로 설 수 없듯이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공동체의 앞길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사리사욕으로 무장한 위정자와 이익집단일 것이다.

애초에 그들은 대한민국의 가치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오로지 개인의 영달과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을 쥐기 위해 젊은이들이 피와 땀으로 쟁취한 자유를 착복하고 위장하면서 마치 그 모든 희생을 자기 해낸 것처럼 윤색과 덧칠을 해가며 결국 자가당착적인 술수로서 지도자가 아닌 모리배임을 그 스스로 증명해 내는 명확한 현실을 보고도 우리는 쉽게 그를 용서함으로써 또 다른 형태의 독재를 불러오는 것은 아닌가라고 하는 역사적 교훈을 1987년 12월 16일 대통령선거가 분명하게 알려준다.

1987년 누란의 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늘 그랬듯이 순수한 젊은이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국내적으로는 87년이라는 과도기적 경계를 넘었고 국제적으로는 세계패권질서의 시대사적 경계마저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 각 분야의 욕구가 봇물처럼 분출되는 가운데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한국정치 지도자들에게 화합과 단합을 요청했고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88 올림픽의 변함없는 서울 개최를 약속했지만 87 체제의 한국은 정치지도자들이 지역거점을 기반으로 세력확장을 꾀하는 매국적 행동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남북 분단에 이어. 동서분열로까지 나아가면서 국론이 사분오열되는 단초가 되어 국민들이 단합하지 못하고 매국적 정치인들의 선동과 마타도어에 속아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배척하고 있는 시작점이 어쩌면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로 쟁취한 직선제의 열매를 앞에 두고 후보통합을 하지 않고 서로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달려든 대통령 후보들의 매국적 행동으로부터 기인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87체제의 대한민국은 분열이라는 씻을 수 없는 강을 그때 넜고 아직도 되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고 분열에 이은 갈등으로 나라를 쪼개려는 정상배가 꼬이고 모리배가 판치는 2025년을 기어이 만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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