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올림픽은 세계패권질서의 요동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 요지부동하던 냉전질서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해가 1989년이었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된 이후 세계는 베트남전 이란 이라크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국지적 전쟁은 있었지만 대규모 국제전으로 비화하지 않기 위해 패권국 미국은 물론 공산진영의 종주국 소련도 최대한 몸을 낮추고 서로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36년간을 대치했다.
핵 이후의 국제관계는 이처럼 핵보유국 간의 전쟁은 곧 인류의 공멸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몇 차례 위기는 있었지만 그때마다 서로가 서로를 자제하면서 핵긴장을 해소하고 원상으로 돌아오는 어쩌면 핵이라는 절대반지가 세계 패권질서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역설적인 평화가 한 세대 이상 지속되고 있었다.
이처럼 핵 핵 거리며 달려온 세계패권질서의 승패는 1953년 한국전쟁 휴전으로 전쟁이라는 열전에서는 가리지 못하고 35년의 냉전 기간을 거치면서 지연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의 승부는 아무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마침내 극명하게 가려지고 말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모두가 근 20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완전체 올림픽이 된 88 서울 올림픽에서 직접 목격한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87 체제 이후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는 민주화를 현장에서 목격한 세계인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대한민국을 극동의 작고 가난하며 분단된 개발도상국이라고 배웠던 동유럽 공산국가들 선수단 개개인이 받은 문화충격은 대단했다. 일당독재로 달리고 있는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압도적으로 승리하였음을 확인하였고, 북한과 비슷하게 공산당 일당독재를 하고 있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공산주의 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대한민국과 같은 번영된 나라를 만들 수 있구나라고 하는 현타와 각성이 동시에 아로새긴 국제 행사가 1988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벌어진 88 서울 올림픽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89년이 되면서 동유럽 공산정권들이 차례차례 붕괴되면서 전 세계 뉴스를 장식했다. 그 해 베를린 장벽과 철의 장막이 무너졌으며,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에 있던 모든 공산 독재 정권들이 몰락하였다. 대다수 동구권 국가들은 평화적으로 개혁개방을 이루어냈으나 루마니아만 유혈사태를 겪었고, 이러한 개혁 개방에 고무되어 꿈과 희망에 가득 찼던 당시 중국 대학생들 수천 명은 천안문 광장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1989년은 조선총독부의 명령으로 강제 폐지되었던 음력 설날이 공식적으로 국가 공휴일로 부활하였으며, 앞 뒤로 하루씩 붙여 3일 연휴가 되었다. 1988년 여소야대 정국으로 유화 분위기가 형성되던 시절인 1989년 3월 25일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실이 알려지고, 같은 달 27일에 열리려던 '남북작가예비회담'이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고 30일에 당시 108일째 계속되던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노동자들의 파업에 정부가 공권력을 전격 투입하면서 공안정국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4월 3일에는 안기부와 검찰, 경찰, 보안사 합동으로 '공안합동수사본부'가 조성되면서 대대적인 공안몰이에 들어갔다. 또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지도부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검거에 착수했다.
대한민국이 그동안 친북 및 공산주의 성향을 가진 동유럽 국가들과 잇따라 국교수립을 맺은 해가 1989년이었다. 이 해에는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와 수교를 맺었으며 이듬해에도 루마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등과도 수교를 맺었고 드디어는 공산국가의 수장 격인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북방외교의 시동을 힘차게 건 한 해로 기록된다.
국내정치적으로는 87 체제의 후폭풍이 불어와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은 봇물처럼 터진 각계각층의 분출되는 욕구에 편승하여 체제를 부정하고 순진한 통일몰이로 대중을 선동하고 불법으로 방북하는 인사가 속출했으며 파업과 데모 같은 노동쟁의로 날을 지새웠으며 5 공청산을 통해 분열된 야권의 책임을 호도하려 했다. 6공 정부는 공안정국을 통해 국면을 전환하려 시도하였고, 경제적으로는 초헌법적인 토지공개념을 발표하면서 번영의 과실을 나누고자 안간힘을 쓴 것도 사실이다.
희망의 80년대의 끝자락 1989년은 요동치는 대한민국이 세계를 흔들고 세계패권질서가 심하게 요동친 한 해였다. 그 중심에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의 한세대가 넘어가는 체제경쟁에서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승리한 대한민국이 있었고, 그 당시 번영된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민주화와 산업화를 완성하기 위해 분투하고 희생한 이전 세대들의 피눈물 나는 역사가 있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