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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90, 앙금 1990

by 윤해

산이 높으면 골도 깊듯이 한 세대 이상 서로 쳐다보지도 않은 상대와 곧바로 친하게 지낼 수 없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감정이라는 산이 높을수록 깊고 깊은 감정의 골이 메워질 때까지 기다려 보든지 그도 아니면 감정이라는 앙금이 가라앉을 때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이 세상을 원만하게 사는 방법 중에 하나일 것이다.

88 서울 올림픽이라는 우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세계패권질서는 요동쳤고, 극동의 작은 나라가 쏘아 올린 그 요동은 엉뚱하게도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 독일의 통일을 가져오면서 동서독이 통합하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가져왔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이 동서로 분단되면서 동독과 서독을 나누는 장벽 앞에 위치하였던 브란덴부르크 문은 자유를 향한 갈망과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공간에서 통일된 독일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155마일 휴전선이 붕괴되는 한반도의 통일이 아니라 저 멀리 유럽에 위치한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세계패권질서의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겨진 한민족으로서 감정의 앙금을 안고 20세기말 마지막 10년 1990년이 시작되었다.

2월 7일 소련 공산당 중앙회의는 자본주의한테 사실상 패했음을 인정했다. 이로써 소련의 붕괴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2월 9일 민정-민주-공화 3당은 합당 의결 후 당명을 민주자유당으로 확정 지었다. 세계패권질서가 요동치면서 미소 양극체제가 소련의 몰락으로 와해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단일 패권시대가 도래하고 있었으며 국내적으로는 건국과 전쟁 이후 민주화와 산업화의 완성을 위해 비대해진 전쟁독재와 개발독재의 권력자들이 구축했던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에게 독점적으로 부여되었던 국가권력을 원래 민주주의의 삼권분립으로 돌아가려는 온 국민의 염원을 모아 탄생된 헌법이 1987년 제정된 제6 공화국 헌법이었다.

87 체제는 직선제 대통령 선출이라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염원이 모여 있기도 했지만 이에 더해 대통령에 의한 독재권력에 신물이 난 국민들이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였고 , 그 축소된 대통령의 권력을 국회에 대거 위임하였으며 사법부에게도 심판자로서 선거관리 업무뿐만 아니라 대통령 탄핵을 통해 대통령 파면 선고도 가능하게 한 헌법재판소를 함께 설치하였다.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은 대통령을 9명의 헌법재판관이 파면할 수 있게 만든 87 체제 이후의 대통령은 사실상 여소야대 국회에서는 언제든지 파면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체제이다. 이 체제의 가장 큰 맹점은 어떻게 2000만 이상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대통령을 국민의 재신임을 묻지도 않고 200명의 국회의원의 동의를 받고 소추하여 6명의 헌법 재판관의 판결만으로 파면해도 되는가라고 하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근본적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이러한 87 체제의 모순점은 그 이후 극명하게 국민의 주권을 훼손하면서 야합하고 포퓰리즘에 굴복한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는 반면에 조금이라도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고 후대를 위하여 바른 정책을 세우려는 대통령은 여지없이 없는 죄도 만들어 내고 있는 공은 삭제시키면서 여론을 호도하는 레거시 미디어의 곡필과 손잡고 그들만의 호랑이 굴인 헌법재판소로 끌고 가 직선제 대통령을 하루아침에 파면시키는 또 다른 형태의 독재를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신종독재가 위험한 이유는 과거의 전쟁독재와 개발독재가 그래도 대한민국의 번영된 미래를 위한 애국심의 발로였다고 위안삼을 수 있으나 87 체제 이후 자행된 짬짜미 신종독재는 망국과 독립 건국과 전쟁을 통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전몰장병과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낸 대한민국의 번영의 열매를 덥석 먹어 치우려는 매국 배금세력들의 작당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갖가지 공작과 협잡 그리고 선동과 흑색선전으로 주권자 국민들의 민의를 박탈하는 일을 백주대낮에 버젓이 자행하고 있어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은 87 체제의 가장 큰 맹점이며 다시는 자신의 한 몸을 던져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지도자를 만나기가 어렵고 , 그저 그렇게 불의와 타협하며 대한민국을 들어먹을 궁리로 가득 찬 세력들과 야합해야만 자신의 정치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그릇된 시그널을 국가와 공동체에게 보냄으로써 국가는 약해지고 공동체는 서서히 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점이다.

1987년 6월 29일 최루탄 연기 가득했던 대한민국에서 피를 흘리며 희생했던 젊은이들의 목숨 값으로 탄생했던 87 체제에서 애국과 희생은커녕 오로지 집권욕으로 가득 찼던 야권 지도자들의 분열과 탐욕으로 보통사람을 내세운 신군부 출신의 노태우가 당선되었지만 87 체제에서 대통령으로서 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열하고 탐욕한 야권 지도자들이 분할하여 점령하고 있었던 국회와 손잡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87 체제의 한계를 깨달은 보통사람 노태우는 어제의 적 김영삼과 김종필의 손을 잡고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띄우며 밖으로는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국가와 수교하여 미래세대의 먹거리를 챙겼고 안으로는 범죄와의 전쟁 선포를 통하여 보통사람들이 안전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며 보통사람의 시대를 활짝 열고 있었던 시기가 세계패권질서가 요동치다 앙금이 가라앉은 199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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