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기 전의 새벽이 가장 길며 어둡다고 한다. 오죽하면 검을 려黎를 써서 여명黎明이라고 할까?
1991년은 세계패권질서가 요동쳤던 1989년을 지나 냉전의 짙은 앙금이 가라앉기 전인 1990년을 넘어 해가 뜨기 전 짙은 어둠이 깔리면서 새판이 짜이기 전의 혼돈과 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1991년은 독일 통일을 시작으로 도미노처럼 동구권 붕괴가 촉발되었고 미국과 세계의 군사, 경제, 문화의 패권 등을 두고 경쟁했던 초강대국 소련이 붕괴하여 공산주의 진영이 와해되었으며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유일 패권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일본은 1980년대 버블경제가 꺼지기 시작하면서 잃어버린 10년 혹은 30년이 출발된 해가 1991년이다. 냉전시대 미소 양극체제의 세계패권질서는 이해를 시작으로 미국식 자본주의 중심 체제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질서를 세우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그리고 헌신의 세월이 필요하지만 질서가 허물어지는 것은 너무도 허무하고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이 역사의 섭리이다.
1917년 블라디미르 레닌의 공산주의 혁명으로 탄생했던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이 출범하는 세계사적 대사건을 마주한 대한민국은 국내외적으로 혼돈 그 자체였고 냉전시대의 국제관계에 익숙했던 세계도 새로운 판이 짜이면서 이합집산에 분주했다.
이러한 격동기에 국익을 위해 어디로 줄을 서는가에 따라 미래세대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생각해 보면 1991년 보통사람 노태우의 북방외교는 여러모로 국익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으며 이 적극적인 북방외교를 발판으로 대한민국은 오대양 육대주로 무역지형을 넓히면서 쇄국으로 당한 망국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걷어내고 건국과 전쟁 이후 잿더미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성취하고 개최한 88 서울올림픽으로 촉발된 세계패권질서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면서 더 이상 변방국이 아닌 중심국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 낼 준비와 역량이 겸비된 선진국으로 달려가는 마지막 티켓을 손에 넣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면서 다가올 격동의 90년대를 바라보며 여명의 1991년을 보내고 있었다.
비록 문명이 추상적인 말과 글을 구체화하면서 흥망이 교대하고 성쇠가 중첩되기도 하지만 결국 문명의 최종 승자가 되려면 적응해야 하며 또한 적응에서 빠져나오려는 속도와 결단이 요구된다. 망국 이후 한반도 백년전쟁이라는 시대적 격랑에 놓여 있었던 대한민국이 80여 년간 달려온 족적은 우리 스스로 만 인정하지 못했을 뿐 어마어마한 성취로 달려온 세월이었다. 망국의 반동으로 생겨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우남의 혜안이 더해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은 정말 애국가 가사처럼 하느님이 보우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미션이었으며,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대한민국을 환골탈태시킨 식민지 청년출신의 교사이자 군인들이 이끌어낸 대한민국 산업화는 높은 교육열과 전 국민 개병제라고 하는 준 전시상황을 묵묵히 감내하고 희생한 신생 대한민국의 청년들의 뛰어난 자질과 인성이 결합되어 전 세계 어떠 나라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대한민국을 이미 80년대에 세웠고 그 우뚝 선 모습을 세계만방에 과시한 88 올림픽을 통해 세계는 경악했으며 그 놀라운 에너지가 파장이 되고 파문이 되어 1991년 세계 패권질서는 공산진영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고 체제전쟁에서 승리한 자유진영의 중심국으로 대한민국은 80년 만에 칼날이 아닌 칼자루를 쥐고 새로운 세계패권질서라는 새판을 요리할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존재하듯이 80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대한민국은 내상을 치료하고 달려올 수는 없었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의 밀알이 되고 밀알이 썩어 거름이 된다고 하는 엄중한 의미는 말과 세 치 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눈물과 내핍 그리고 희생을 바탕으로 한 헌신이 없으면 다음 세대가 따먹을 열매 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할 수가 없다. 88 올림픽은 세계인만 본 것은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도 비록 개최국 프리미엄이 있었다 하더라도 스포츠로 세계 4강에 들어가는 기적을 확인하면서 자부심과 국가의 위상도 느꼈겠지만 우리를 찾아온 세계각국의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일상을 전시처럼 살아온 우리들 자신의 모습도 함께 보기 시작했다. 87 체제는 그동안 국가를 위해 희생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제는 좀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만든 체제이며 민주국가의 주권자로서 권리행사를 하겠다는 준엄한 명령이었다.
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집권욕으로 분열된 야권지도자들의 파행으로 정권은 여전히 신군부 출신 노태우로 어부지리처럼 넘어갔지만 순순히 대선에 승복하지 않았던 분열된 야권 지도자들은 지역을 거점 삼아 국민들을 산산이 분열시키고 또다시 깃털만도 못한 권력욕으로 국회를 차지하고서 87 체제의 순수함을 개인의 욕심으로 치환하면서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았고 보통사람 노태우는 3당 합당이라는 야합을 하였으며 그렇게 야합된 민자당을 공격하는 범야권이 주도한 데모와 노사분규 그리고 학생들의 분신으로 이어지는 학내분규로 1991년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냉전의 종식은 남북간 해빙무드를 조성하였고 체육계에서 남북단일팀이 4월의 일본 지바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단체전 우승에 이어 6월 1991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포르투갈의 남북단일팀 8강에 오르는 성과를 내었다. 1991년 9월 17일 대한민국은 북한과 함께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을 하였고 , 이어서12월 13일 남북기본합의서 발표까지 이끌어 내었다. 또한 이 해는 30년 만에 지방 자치제가 부활된 해로서, 3월 26일에 기초의회 의원선거가, 6월 20일에 광역의회 의원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경제적으로는 한국의 GDP가 세계 15위 안에 들었고 GDP 규모가 처음으로 인도를, 1인당 GDP가 남유럽 국가(몰타)를 추월한 상당히 큰 의미가 있는 해이기도 하였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고 자라듯이 소아적 권력욕으로 무장한 정상배들과 모리배들이 1991년에도 대한민국을 흔들어 댔지만 이미 80년간 항로를 바로잡은 대한민국호의 방향타를 돌려 변침하기에는 정상배와 모리배들의 힘은 미미했고 탄력 받으며 80년간의 관성으로 세계패권질서가 꿈틀대던 여명의 바다로 미끄러져간 대한민국호는 이제 웬만해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는 덩치로 세계시장을 노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