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해 록] 백년전쟁 92, 레콩키스타 1992

by 윤해

1992년은 조선이 개국한 지 600년이 된 해이며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상륙한 지 500년이 된 해이고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400년이 되는 해이다.

각각 100년의 시차를 두고 한반도와 서양 그리고 동아시아가 요동치면서 원명 교체기에 대륙의 주인공이 누가 되는 가를 두고 요동정벌에 나선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면서 우리 민족은 드넓은 만주 평원을 달리던 고구려 개마무사가 개척한 고구려의 고토, 즉 실지 회복을 못하고 한반도 안에 갇힌 나라 조선을 1392년에 개국하였다.

711년에서 1492년까지 북아프리카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하여 정복하였을 때, 780년 동안 에스파냐의 그리스도교도가 이슬람교도에 대하여 벌인 실지(失地) 회복운동, 레콩키스타 Reconquista는 재정복 reconquest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이베리아반도에서 가톨릭 왕국들이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벌인 활동을 의미한다.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결혼은 에스파냐 통일국가를 탄생하게 하였다. 1492년 페르난도와 이사벨은 이슬람 최후의 거점인 그라나다를 함락시킴으로써 국토회복운동을 완성하였다. 에스파냐의 종교통일운동은 이 같은 독립운동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레콩키스타를 완성한 페르난도와 이사벨의 후원에 힘입어 콜럼버스는 1492년 신대륙에 상륙하면서 세계사의 물꼬를 바꾸어 놓고 말았다.

그로부터 100년 뒤 100년 내전을 끝낸 일본은 해양세력의 주구가 되어 한반도에 갇힌 조선을 발판 삼아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야욕을 품고 1592년 동아시아 대전이자 해양세력이 드디어 힘을 길러 대륙을 병탄 하려는 문명사의 역전이 시작된 해가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된 해이다.

1992년은 이처럼 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의미심장한 한 해였다. 대륙세력에게 빼앗긴 실지失地 회복운동, 레콩키스타 Reconquista를 포기하고 한반도에 갇힌 조선이 1392년 개국한 지 600년이 흐른 시점이었고 조선은 200년 뒤 1592년 레콩키스타 Reconquista를 통해 실지失地 회복을 완성하고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국부를 폭발시킨 해양세력이 사주한 일본에 의해 거의 망할 뻔했으나 대륙세력의 도움을 받아 기사회생하였다. 해양세력은 결국 신대륙의 재화를 밑천 삼아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식민지를 개척하는 18, 19세기에 걸친 해양세력의 황금시대, 제국주의를 완성하고서야 전통의 강호 대륙세력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로 접어들면서 해양세력끼리 식민지를 두고 처절하게 싸웠던 1,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패권질서는 대륙세력이 주축인 공산진영과 해양세력이 주축인 자유진영 간의 치열한 각축을 하다가 또다시 해양세력의 대표 미국이 문명사의 헤게모니를 쥐었고 1992년 실지(失地) 회복운동, 레콩키스타 Reconquista가 시작되었던 스페인에서 개최된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미소라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체제 전쟁에서 미국이라는 해양세력이 승리하여 또 다른 문명사의 실지(失地) 회복운동, 레콩키스타 Reconquis를 완성하였다는 축제의 장처럼 진행되었다.

그 사이에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치열했던 교두보, 대한민국은 여갑순이 사격에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냈고 황영조가 마라톤에서 해양세력의 주구 일본을 제치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금메달을 차지함으로써 작게는 망국의 식민지 청년 손기정 남승룡이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 올림픽에서 딴 금, 동메달의 한을 씻었고 크게 보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서 문명사적 주변국으로 물러나며 망국의 변방국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이 세계사의 중심국으로 복귀하였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세계에 선포한 의미 있는 대회였다.

1992년은 대한민국에서 1984년 이후 출산율 1.76과 출생아 수가 73만 여 명으로 가장 많은 해였으며, 정치권에선 민자당은 14대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차지했지만, 과반수를 넘지 못해 2년 만에 '여소야대' 시대가 다시 되었고, 하반기 들어 헌정사상 최초로 중립내각이 수립되었고 12월 대선에선 민자당 후보 김영삼이 민주당 후보 김대중을 이겨 문민정부 탄생을 이루어 내면서 1961년 5.16 군사혁명으로 막을 올린 군사정권이 31년 만에 막을 내린 해이기도 하다. 경제 분야에선 주식시장을 외국인들에게 개방하였다. 외교 분야에서는 한-중 양국이 공식 수교한 해이다. 전년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로 순조로웠던 남북관계는 미국의 북핵문제 제기로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망국과 독립 건국과 전쟁이라는 백년전쟁이 단순히 한반도라고 하는 닫힌 계안에서 바라보면 역사와 문명의 정반합을 도저히 읽어낼 수 없다. 그러나 가치를 바탕으로 만든 문명사에서 잃어버린 고토를 찾고자 했던 780년간의 실지失地회복운동, 레콩키스타 Reconquista를 기어이 완성한 해양세력의 저력에 비해 너무 일찍 대륙을 포기했던 조선의 가치가 결국 망국으로 달려가는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망국 후 80년간 죽을힘을 다해 뛰어온 대한민국은 역사의 정반합이 늘 그렇듯이 다시 한번 세계사의 중심국가임을 88 올림픽 4년 뒤 열린 해양세력의 출발지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주익경기장에 입장하면서 42.195킬로미터를 뛰고도 주먹을 불끈 쥐면서 포효했던 대한국인 황영조 선수의 표정에서 대한민국이 지나온 모든 것이 담겨 있었고 마침내 문명사의 중심국으로 복귀했음을 만방에 선언한 것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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