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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93, 무인과 문민 1993

by 윤해

농업혁명과 가축혁명을 통해 잉여 농산물을 생산해 내고 문명 세상을 만든 이후 눈에 보이는 계급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까지 세상을 사는 인간들은 알게 모르게 계급사회를 살았고 그러한 계급을 마치 천형인양 감내하기도 특권인양 누리기도 하면서 갖가지 부조리와 모순을 잉태하면서 꾸역꾸역 세상은 굴러가고 그 세상 속의 개인은 한 계단 위로 올라가기 위해 한 생을 바치는 것을 예사로 하기 마련이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의 섭리만큼이나 강력한 살아남아 번성해야 한다는 세상의 원리가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계급의 분화만큼이나 질긴 것이 역할의 분담이었으며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하는 여러분이 있기에 세상은 돌아가고 일보 전진하는 것이다. 사농공상, 군관민 등 시대마다 시대정신이 작동하면서 서열은 바뀌지만 문명이라는 이름만큼 글을 알고 잘 구사한다는 능력이 그대로 글로 기록되는 세상을 선도했고 그런 연유로 문무의 서열은 요지부동이었다. 사람과 백성이 다른 것처럼 인간과 민간은 구별된다. 난세에는 무인이 문민을 지배하고 평시에는 문민이 무인을 사용한다. 이렇게 지배하는 자는 무인이고 사용하는 자는 문민이다. 사람보다 못한 백성들이 무보다 문을 선택하면 문민이 되어 무인을 사용하지만 난세에 사람들이 무를 따르면 무인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처럼 뿌리 깊은 문무를 선택하는 사람과 백성들이 세상을 만들고 세상은 문민과 무인을 번갈아 선택하면서 평시와 난세를 헤쳐나가는 법이다.

1993년 2월 25일 김영삼이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로써 32년간 군인 출신의 무인정부는 대단원의 마감을 하고 민간인 출신 정부인 문민정부가 마침내 출범하였다. 이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대한민국은 국민들이 지배당하지 않고 국가 서비스를 이용하고 사용하는 진정한 민주국가의 주권자로서 거듭나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와 함께 앞으로 국민들의 선택에 의해 국가의 명운이 결정되는 무거운 책임 또한 국민의 몫으로 떨어졌음을 그때 우리는 잘 몰랐을 것이다. 이처럼 권리와 의무 책임과 희생이라는 진정한 민주화의 의미는 모른 체 대접받고 완장차고 갑질하는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 나듯이 그동안의 압제에 대해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무책임하고 무절제한 망동과 행패 또한 봇물 터지듯이 분출되었고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국민들의 주권자로서의 권리는 하늘을 찔렀다.

문민정부를 표방하여 취임 초기부터 본인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해 부패 공직자들을 대거 숙정했고,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시행, 안기부 개혁 등 속 시원한 개혁에 착수하여 국민들의 박수를 한 몸에 받은 김영삼은 취임 초기 지지율이 90%대를 돌파하였고 그 여세를 몰아 공직기강을 바로잡고 규제일변도의 행정사무지침을 구제와 대민서비스 향상이라는 신 한국건설의 기치를 높이 올리면서 문민정부는 힘 찬 출발을 한 해가 1993년이었다.

1993년 1월 1일 노태우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국민 대화합'을 선포하며 새 정부 건설에 동참할 것을 당부하였다.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는 신년사에서 '신 한국 창조'를 강조하였다. 1월 20일 빌 클린턴이 제42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1월 29일 1993학년도 후기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치러졌다. 이 시험을 끝으로 대입 학력고사는 폐지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었다. 2월 25일 김영삼이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로 인해 32년 만의 민간인 출신 정부인 문민정부가 출범하였다. 국회는 황인성 전 국무총리와 이회창 전 감사원장 등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가결하였다. 3월 14일 정부는 북측의 NPT 탈퇴가 해결될 때까지 남북대화를 당분간 동결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28일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구포역 북부에서 지반붕괴로 전복되어 78명이 숨지고 193명이 다쳤다. 6월 10일 경기도 연천군 다락대 사격장에서 동원예비군 포사격 훈련 도중 폭발사고가 일어나 훈련 중이던 예비군 16명과 현역병 3명 등 총 19명이 사망했다. 8월 5일 정부는 박은식 등 애국선열 5인의 유해를 봉환하였다. 서울시는 4.19 묘역 성역화 사업계획을 확정하였다. 8월 7일 1993 대전 엑스포 개막식이 대전직할시 유성구 도룡동 전시장 전역에서 개최되었다.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재정명령(금융실명제)'을 직접 발동하였다. 8월 20일 정부는 경부고속철도 차량 형식을 TGV로 선정하였다. 10월 10일 전북 부안 위도 앞바다에서 110t급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해 탑승객 362명 중 292명이 사망했다. 10월 28일 한국 축구대표팀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일본과 이라크가 2-2로 비기면서 극적으로 본선에 진출하였다. 11월 1일 유럽 각국의 정치 경제통합을 골자로 한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발효되었다. 이로써 EC는 '유럽연합(EU)'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2월 9일 김영삼 대통령은 UR로 인해 불가피하게 쌀 시장을 개방한다는 요지의 공식 담화를 발표하였다. 12월 15일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7년 만에 최종 타결되면서 세계 무역 질서는 기존의 GATT 체제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개편되었다.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북미 지역에서 개봉되었다.

글로 만든 문명에서 사람은 글로 시대를 창조하는 문민시대를 열어가기도 하지만 난세에 놓인 인간은 무기를 들고 나타난 무인들이 지배하는 세상도 헤쳐나가야 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시비곡직의 문제가 아니라 죽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국가라는 공동체에게는 일상사이며 초미의 관심사이다.


냉전의 패권질서가 사라져 가면서 냉전의 최전선, 대한민국도 더 이상 군인이라고 하는 무인들의 지배를 새로운 시대가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문화의 힘으로 웅비하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신 한국 건설의 기치를 높이 들고 출범한 1993년의 문민정부는 망국의 식민지 청년으로 태어나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고 전 국민들을 병영으로 몰아넣으며 오천 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 산업화의 거름이 된 난세의 엘리트 군인만큼의 애국심과 실력을 과연 가지고 있는가라고 하는 시험대 앞에 서있었으며 의욕으로 가득했던 그들 문민정부 앞에는 권리로 똘똘 뭉친 주권자 국민들의 매섭고 날카로운 눈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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