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그리 중한디 라는 말이 한 때 시중에 회자된 적이 있었다. "뭐시 중헌디, 뭐시 중허냐고! 뭐시 중헌디 모름서"라는 영화 '곡성'에 나온 명대사다. 딸 효진이 아빠 종구의 계속된 질문에 악다구니를 지르면서 소리친 말이다. 경찰인 종구는 동네에 살인사건이 났다는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현장으로 간다. 현장 감식에서도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등 타인의 죽음에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종구, 민중의 지팡이가 이래도 되나 싶다. 그러다 딸 효진이 잡신에 들려 이상 반응을 보이고 나서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실마리를 쫒는다.
세상일에는 순서가 있다. 큰 일과 작은 일, 급한 일과 중요한 일,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 등이다. 국가는 존재가치가 글자 그대로 창을 들고 나라의 국경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하다. 1994년 1월 21일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회견에서 IAEA의 전면사찰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1월 17일
북한과 IAEA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3차 실무접촉을 하면서 대화를 거듭하던 북한이 돌연 강경책으로 선회하면서 1994년은 1차 북핵위기가 발생한 한반도 안보지형에 중하디 중한 한 해로 기록되었다.
벼랑 끝 전술 brinkmanship, 또는 위기 전술危機戰術은 냉전 당시에 미국과 소련 사이에 마치 전쟁을 하자는 것처럼 보이면서 적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외교적 협상 전술을 말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대표적인 벼랑 끝 전술의 전형이다.
한반도 백년전쟁에서 핵은 늘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었다. 망국의 독립전쟁이 당랑거철이라고 한다면 해방직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리틀보이와 팻맨은 일제의 옥쇄작전으로 초토화되기 직전의 바람 앞에 등불 신세인 한반도를 기적적으로 구해내어 국토를 전화에 휩쓸리지 않고 분단과 맞바꾼 건국을 가능케 한 절대반지였지만 소련의 마리오넷 김일성의 오판과 과욕으로 국토는 참절되었고 맥아더 장군의 핵사용을 막아선 트루먼 때문에 한반도는 수백만의 목숨을 희생하고도 도로 분단된 155마일 휴전선과 마주해야 했다.
이처럼 한반도는 핵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해방과 건국 전쟁의 참화를 거치면서 핵과 핵이 부딪히는 냉전의 최전방이었으며 냉전이 끝나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북한은 남북간의 체제경쟁에서 패배한 것도 모자라 그들의 후원세력 공산진영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며 급기야 그들을 마리오넷 줄로 조종하던 소련까지 해체되자 그야말로 각자도생 하여 살 길을 모색하기 바빴다.
남북간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재래식 군사전력 마저 현격한 열세를 절감한 북한은 1993년 3월 12일 IAEA를 전격적으로 탈퇴하면서 핵물질을 재처리하기 시작했고 다시금 한반도에 어른거리는 핵유령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1994년은 이같이 핵을 둘러싼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북 간의 제네바협상이 시작되었고 북미 간에는 회담과 영변 핵시설 폭격이라는 벼랑 끝 전술 brinkmanship이 시작된 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때 해결 못한 북핵문제를 2025년 지금까지도 우리는 머리에 이고 살고 있다.
1994년은 서울특별시가 1394년 태조 이성계가 새로 세운 나라의 도읍지로 한양을 결정한 이후 60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 정도(定都) 600년' 기념행사를 1년 내내 성대하게 홍보하였으며 한강의 기적을 낳은 600년 된 수도 서울 한강에서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충격적 사고가 10월 21일에 일어났다. DRAM 반도체 경기 호황으로 삼성전자의 주가가 오르며 코스피지수(당시 종합주가지수)가 1138.75포인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기록은 2005년이 되어서야 깨지게 된다. IT 업계에서도 한국통신과 데이콤이 상용 인터넷 서비스를 처음 실시해 대변혁을 일으켰다. 그 해 여름 라이온 킹과 포레스트 검프가 개봉한 해이며, 마스크, 트루 라이즈, 스피드에 이어 겨울에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덤 앤 더머등 할리우드의 유명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줄줄이 나온 해이기도 하다. 그 덕에 미국에서만 역대 한 해 흥행 수입과 관객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펄프 픽션, 쇼생크 탈출과 같은 고전 명작이 쏟아진 모던 클래식의 대작이 쏟아진 한 해였다. 이해 여름에는 끔찍한 혹서酷暑와 열대야가 찾아왔다. 이 폭염 동안 전국적으로 92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북한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김일성이 돌연 급사하였다. 믿기지 않던 더위와 함께 사망한 김일성의 죽음도 더 믿기지 않던 시절이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에 이어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건, 지존파와 박한상의 엽기적이고 반인륜적 살인사건, 대한항공 2033편 활주로 이탈 사고,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 등이 이어졌으며, 부천과 인천 등지에서 공무원들의 세금 포탈 사건이 터져 김영삼 정부의 개혁 조치를 무색게 했다.
기존질서의 붕괴에서 새로운 질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지체시간 遲滯時間이 있기 마련이지만 비난을 들어도 뭣이 중한줄을 알고 묵묵히 일했던 군인출신의 무인정권과 달리 평생을 비판과 핑계무덤으로 젊은 날을 보냈던 야권 출신의 문민정부는 그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실력과 관리의 한계를 보이며 뭣이 중한줄을 모르고 겉치레와 수사로 가득 찬 신 한국을 창조해 나가는 동안에 진짜로 중하디 중한 국민들이 전시도 아니고 평시에 죽어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사고 공화국을 만드는 역설적 상황이 수시로 재현되면서 벼랑 끝 한 해가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