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병震動病이란 기계나 기구의 진동振動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직업병으로서 지각 장애와 땀 분비의 장애나 손과 팔이 저린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달려온 대한민국은 건국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반세기를 그야말로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반세기 전의 망국의 트라우마를 헤치고 넘어 80년도의 목표 국민소득 1000불 수출 100억 불의 까마득한 꿈의 목표를 오로지 할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뭉친 망국의 식민지 청년 출신의 산업화 세력들이 국민들과 함께 죽기 살기로 한마음으로 노력하고 매진한 끝에 70년대 말 조기에 달성하였다.
87 체제라고 하는 직선제 대통령을 선출하는 절차적 민주화 마저 이루어낸 대한민국은 이듬해 개최한 88 서울 올림픽을 통해 세계패권질서의 변화마저 이끌어 내어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반세기 가까운 체제경쟁에서 자유진영의 승리를 가져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고 마침내 1992년 문민정부를 탄생시키며 신 한국 건설로 나아가게 되었다.
1995년은 해방 후 반세기를 달려온 대한민국이 경제 면에선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해 세계은행 공인 고소득국가에 처음 돌입했고, 수출액도 1천억 달러, GDP 순위도 11위를 돌파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분리수거나 쓰레기 버릴 때 흔히 보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이때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한진그룹, 대한페인트잉크, 해태그룹, 동아그룹, 태평양그룹, 대웅제약, 삼립식품, 고려제강 등 1945년에 창업한 해방둥이 기업들은 '창립 50주년'을 성대히 맞이했고, 경찰청도 '한국경찰 창설 50주년'을 맞이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그 어느 신생 독립국도 올라타지 못한 선진국행 막차에 오른 대한민국 국민들 귀에 우레와 번개가 동시에 들리고 번쩍였던 해가 바로 1995년이었다. 그 전해 1994년 10월 21일 한강다리가 순식간에 무너진 성수대교 참사로 인해 등굣길 버스에 탔던 꽃다운 나이의 무학여고 여학생 8명을 포함하여 시민 32명이 희생된 것을 시작으로 1995년 4월 28일 대구지하철 가스 폭발사고로 발생한 사망자 101명 중 절반 가까이에 달하는 43명(교사 1명 포함)이 역시 꽃다운 나이의 영남중학교 학생들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어 사망자 502명 실종자 6명 부상자 905명이라는 참사 앞에 그저 온 국민들은 마치 우레와 번개에 맞은 듯 자신의 두귀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백화점 지하에서 구조된 40명의 구조 소식에 온 국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삼풍붕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1995년 7월 23일 14시 20분쯤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소리도 인근 해상에서 14만 톤급 유조선 ‘씨프린스호’가 태풍을 피해 먼바다로 피항하던 중 소리도 동쪽 까치섬(작도)에 충돌했다. 씨프린스호 기름유출사고는 유조선 사고가 해양 생태계에 매우 위험하다는 심각성을 인식시킨 계기가 되었다. 바다에 기름이 유출되면 기름띠를 형성해 오랫동안 바다를 죽은 바다로 만들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고 10여 년 후 해상수질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었다고 밝혔다.
압축성장은 압축폭발을 가져왔고 그 모든 것은 우레와 같은 진동음이 귀를 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망국의 결핍, 오천 년 가난이라는 결핍으로부터 한시바삐 탈출하고자 했던 기성세대의 과욕이 미쳐 피어나지도 못한 청년세대를 희생시키는 아픔으로 다가올 때 느끼는 진동병은 단순히 기계나 기구에 의해 땀나고 손발이 저린 것을 넘어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내면서 온 국민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이러한 1995년의 비극적 상황 앞에서 우리는 도약도 비약도 두발을 지접 하고 단계와 절차를 생략하지 않고 약진하는 것이야말로 보다 소중한 가치임을 아프게 깨닫고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인재가 속출하고 있을 때 북한에서는 대홍수로 인해 북한동포들이 기아선상에 놓이게 되었으나 세습왕조의 도로조선으로 복귀한 독재자는 권력만을 탐하다가 나라를 고난의 행군으로 몰고 가고 있었고 , 국제적으로도 극단적 민족주의가 해가 갈수록 더욱 강해져 제1차 체첸 전쟁과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이기도 하고 또한 보스니아 전쟁 당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유럽에서 자행된 가장 잔인한 전쟁범죄이자 학살인 스레브레니차 학살이 벌어졌다.
정치권에선 김종필 민자당 대표가 YS와 갈등으로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고, 아태평화재단 이사장 김대중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정계에 복귀해 '신 3김시대'를 열었다. 5공 청산에 대해 역사적 판단에 맡기려던 정부도 10월 박계동 민주당 의원의 노태우 비자금 내역 폭로로 '역사 바로 세우기'가 촉발되어 노태우, 전두환 두 전직 대한민국 대통령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최초로 검찰에 소환하고 구속시켜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70년 만에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을 철거해 경복궁 2차 복원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일본에서는 1월부터 규모 7.3의 효고현 남부 지진이 일어나 고베시 등지에 큰 피해가 일어났으며, 사망자 6,437명, 부상자 43,792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약 1400억 달러의 손해가 발생해 일본 경제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사람의 몸을 닦아내고 독소를 제거한다는 공기 물 소금의 의미인 삼풍은 자연에서 인간의 먹거리 중에 가장 풍부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결국 삼풍백화점을 만든 이준은 첫째도 욕심, 둘째도 욕심, 셋째도 욕심이라는 배금주의에 몰두하여 세상을 욕심으로 도배하려 하였고 그 욕심으로 가득했던 건물은 양상군자도 올라탈 수 없는 무량판 구조로 지어졌고 정상적인 시공사가 건축주 이준의 사상누각에 혀를 내두르고 포기하자 스스로 삼풍건설을 만들어 셀프불법 시공을 마음껏 하고서도 뭐가 그리 미흡했던지 사상누각의 최상층에 수영장 물을 채우는 보수공사를 하다가 무너지기 2시간 전에 대피도 시키지 않고 수천 명의 고객을 내팽개치고 자기만 살겠다고 빠져나온 인면수심의 모습은 2014년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과 묘한 데자뷔가 되면서 죽을힘을 다해 가난에서 국민들을 건져 올린 망국의 식민지 청년출신들이 이룩한 산업화를 폄훼하고 집권한 자칭 민주화 세력이 거창하게 내세운 신 한국 건설의 의미와 실력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87 체제는 두고두고 국민들을 진동병震動病에 놀라게 했으며 온 국민에게 지각 장애와 땀 분비의 장애나 손과 팔이 저린 증상이라는 부작용이 오천 년 가난이 물러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지금까지도 주권자 국민의 귀를 가리고 눈을 멀게하며 손발은 물론 마음까지도 저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