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해를 땅에서 보면서 마디마디 구분해서 보는 것에 불과하다. 한 생을 살다 보면 편의상 이 시간의 흐름을 시대의 조류로 분류하여 묶고 풀고 자르고 합치면서 마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결되는 동영상처럼 생을 바라보지만 동영상이 수많은 컷필름을 우리가 의식 못할 정도로 이어 붙인 것이라는 것이라면 우리의 현실은 분해조립과 같이 절대 인식하지 못하는 거대한 우주 앞에 한 점도 안 되는 미물인 우리가 그래도 주변을 우리 인식체계 안에 밀어 넣기 위한 방편으로 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르고 잘라 마디마디 구분해서 보는 시간을 통해 공간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이라고 생각하면 적절할까 고민해 본다.
태양계라는 우주 공간을 사는 우리가 해를 보며 느끼는 공간감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절대적이다. 어두운 밤으로 접어드는 일몰직전의 태양이 가장 밝다는 것은 떨어지는 장엄한 일몰을 쳐다보면 일몰이라는 것이 여명의 일출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사람의 한 생도 노년의 모습이 그 사람의 본모습이듯이 해가 떨어진 뒤에도 찬란하게 서쪽하늘과 구름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가 어쩌면 우리가 볼 수 있는 태양의 본모습일 것이다.
1945년 해방 후 반세기를 달려온 대한민국,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체제보다 치열하게 건국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오천 년 가난을 물리치고 모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의거와 혁명 유신과 독재 쿠데타와 저항 그리고 선언을 통해 만든 다이내믹 코리아가 맞이했던 1996년은 마치 낙조의 붉은빛처럼 찬란한 성취감을 애써 숨기지 않고 자신감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해 10월 14일부터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보화 5대 목표'를 발표했다.
1.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가 협력하는 열린사회
"정보를 가진 자"와 "정보를 못 가진 자"의 격차를 해소, 모든 국민들이 정보와 지식을 공유해 차별 없이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보접근에 있어서의 기회균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2. 인간중심의 가치를 창조하고 윤택한 삶을 누리는 사회 인간이 자연을 보다 지혜롭게 이용하고 자연파괴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정보기술을 활용한다.
3. 전통문화가 발전적으로 전파되고 계승되는 문화사회 정보사회에서는 문화의 교류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진행될 것이며 세계 각국의 새로운 정보시스템들은 자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므로 우리도 정보화를 통해 우리의 우수한 문화자원을 정보자원으로 적극 개발,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4. 투명하고 공정한 정보민주주의 사회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기에 제공하는 것이 정보민주주의 구현의 실체다. 정보민주주의에서는 열려 있는 전자공간을 통해 국민들의 알 권리, 의사표현의 자유, 신념의 자유 등이 보다 확실히 보장될 수 있다.
5. 인류공동번영에 기여하는 아시아의 정보중심국가
APII를 제창, 실현시킨 데 이어 앞으로도 아시아지역의 이해증진과 공동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적극적인 국제협력을 추진한다.
1996년은 Windows 95가 설치된 PC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라는 시대적 조류에 힘입어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서 정보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거국적 노력이 시작되었고, 지금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사실상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 희망과 활기, 낙관론이 넘쳤던 때이기도 하다. 1차 베이비 부머 세대가 낳은 1990년대생 출생자가 굉장히 많고 그 이후의 시기부터 급격하게 출생자가 급감한 이유도 성취감과 자신감이 팽배했던 그 당시 사회분위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1996년은 대한민국의 OECD 가입으로 진정한 선진국행 막차를 탔다는 느낌이 현실화된 한 해였고 그동안의 끊임없었던 대형사고도 잠잠해지며 내치적으로 안정감을 맛보던 때였다. 그러나 87 체제의 한계인 5년 단임의 대통령제는 레임 덕이라는 심각한 문제점이 노출되었고 그동안 대한민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전임 대통령의 소급적 형사처벌이라는 전대미문의 선고도 이 해에 이루어졌다. 1996년 8월 6일, 서울지검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구형하였다. 항소심이 열린 12월 16일, 전두환과 노태우는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형으로 감형되었다. 항소심 선고에서 눈에 띄는 건 6.29 선언 이전의 정부를 '내란에 의한 정부'라 규정한 것이었다. 이 판결이 비록 정의를 바로 세운 판결이었다 할지라도 소급적이고 위헌적이라는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기요틴으로 상징되는 프랑스 대혁명이 서구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듯이 역사가 일천한 한국의 민주주의도 어슬펀 기요틴의 칼날을 소급적으로 전임 대통령에게 들이미는 과오로 인해 87 체제는 이후 두고두고 5년 단임대통령을 기득권들의 사법심사의 먹잇감으로 전락시킨 치명적 결함을 잉태시켜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라는 국민적 구심점을 와해시킨 동시에 국민들을 분열시켜 갈등하게 하여 기득권의 매국적 망동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국민 개개인의 협상력 약화를 가져와 지금의 내로남불산성을 높이 쌓게 만들어 앞마당과 뒷마당을 구분 지어 매국노들이 세력화하고 부패화 하며 국민들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고 전횡을 일삼고 국민들을 겁박하는 지경에까지 온 단초가 된 사건이 이름도 거창한 역사 바로 세우기 인지도 모른다.
찬란하게 떨어지는 낙조가 대한민국이 달려온 반세기의 오욕과 영광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프리즘 같았다면 일몰 후 겪어야 할 깜깜한 밤의 공포와 허기 그리고 추위는 또다시 오롯이 국민들이 겪어야 할 시대적 업보임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모두가 중산층이라고 자부하고 살았던 그때의 우리 국민들은 다가올 밤의 고난을 짐작도 못한 체 일몰 전의 낙조를 바라보며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