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차면 기울고 해가 뜨면 떨어지며 밀물이 있으면 썰물도 있는 자연의 섭리 못지않게 세상의 원리도 공수와 부침 사이에서 숨을 고르는 정적이 존재한다.
자연의 섭리나 세상의 원리나 모든 것은 순환이자 사이클이며 파도이며 파동이다. 어떤 방향으로 순환할지 어떤 공간으로 이동할지를 섭리가 정하고 원리가 숨 쉰다. 다만 파동의 진폭, 순환과 사이클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생명과 사명을 명 받고 생사를 넘나 들고 사는 동안에는 생사의 순환을 경기의 호불황으로 바꾸면서 일희일비하고 정체를 못 견뎌하는 것을 넘어 R( recessoin)의 공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것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독재로 흐르듯이 성공신화도 말 그대로 신화이지 현실의 토대 위에 숨 쉬는 네버엔딩 스토리가 될 수는 없다. 먼 길을 떠나려면 가진 것을 내려놓고 그동안의 성공신화도 지워야 한다. 자기 주위를 장식했던 군더더기와 같은 거추장스러운 고정관념은 스스로를 얽어매는 족쇄로 작용하여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는 것은 세상의 불문율이요 공식인지도 모른다.
1948년 건국한 신생 대한민국이 반세기를 넘어서는 1997년 또 다른 반세기를 달려가 백 년을 번영하기 위해서는 지난 반세기의 성공신화를 버려야 했고 그 신화가 내부적으로 깨어질 가능성은 없었고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외부의 공격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1996년까지 대한민국은 이른바 아시아의 네 마리 용 (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으로서 펀더멘탈이 튼튼하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지만 , 태국,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북상하는 아시아 금융위기의 높은 파고를 피할 수는 없었다. 태국 바트화 폭락을 시작으로 촉발된 1997년 외환위기는 1997년 10월, 외환위기 직전 노동부에 신고된 전국 사업장 체불임금 금액은 6480억 원에 달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임금도 못 받는 형편에 직면해 경제위기 상황으로 내몰렸고 11월 8일 당시 임기말의 대통령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권의 허위사실 유포에 엄히 대처하겠다며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다. 11월 19일, 경제가 위기에 빠져들면서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물러나고 임창열 통상산업부 장관이 새 경제 부총리로 임명되었고 환율 변동 폭을 현행 2.25% 범위 내에서 10% 범위 내로 대폭 확대한다고 발표한다. 11월 21일, 정부가 결국 국제 통화기금 국제통화기금의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로 했다. 구제금융 요청은 경제 우등생 한국의 신화를 뒤로 한 채 사실상의 국가 부도를 인정하고 국제기관의 품 안에서 회생을 도모해야 하는 뼈아픈 처지가 된 것으로 임창열 부총리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3당 대통령 후보와의 청와대 만찬에 참석해 국제통화기금 구제 금융에 불가피성을 설명한 뒤 밤 10시에 IMF 요청 사실을 공식 발표한다. 임창열 부총리는 그날 우리나라를 방문 중인 스탠리 피셔 IMF 부총재와 티모시 게이디너 美 재무부 차관보와의 잇단 접촉에서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IMF는 그냥 돈 만 빌려주는 곳이 아니며 IMF에 돈을 빌린 나라들은 IMF의 명령에 따라 경제운영을 해야 한다. 12월 3일, IMF와의 협상이 최종적으로 발표되었다. 임창열 경제부총리와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협상을 마치고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대회의장으로 나와서 협상의 타결 소식을 전했는데 캉드쉬 총재는 이 자리에서 한국에 지원할 자금 규모는 모두 550억 달러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먼저, 550억 달러의 자금 조달 내역을 보게 되면 국제통화기금이 210억 달러, IBRD 세계은행이 100억 달러, ADB 아시아 개발은행이 40억 달러 등 국제기구에서 350억 달러를 지원하는데 합의했다. 1997년 12월 3일을 기점으로 사실상 경제주권을 국제통화기금에 바치는 IMF 관리 체제에 들어간 대한민국은 2001년 8월까지 4년간 국제통화기금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따르게 되었다. 이로써 IMF에 돈을 빌리고 그들의 뜻에 따르는 조건으로 경제주권을 IMF의 손에 맡기는 처지가 되었고 당시 IMF 총재 미셸 캉드쉬는 한국이 국제통화기금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대한민국 정부를 위협하기도 했다.
건국과 전쟁 이후 잿더미가 된 폐허위에서 숨고를 새도 없이 달려온 기적의 대한민국호가 마침내 멈춰 선 1997년은 현대사 역대급 최악의 해라고 불리는 시기이며 문민정부의 레임덕과 노동법 안기부법 반대 총파업으로 초반 정국이 시끄럽던 차에 대기업 한보그룹의 파산을 시작으로 김현철 스캔들, 황장엽 망명 등으로 정국이 뜨거웠고, 연말에는 기어이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져버렸다.
영원히 잘 나갈 것만 같았던 성공신화에 매몰되어 다지고 조심하는 디테일 강한 정부를 만들 역량과 실력이 없었던 민주화 세력이 만든 문민정부는 그들의 장기인 이념과 선악에 경도되어 과거 망국과 군부독재의 역사를 지우고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소급 역사를 치적이라는 허울로 포장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고 타조가 얼굴만 숨기면 위험이 사라질 것이라 믿는 닫힌 계의 쇄국을 넘어 번영의 샴페인을 일찍 터트린 대가는 참혹했으며 그 고난은 오롯이 대한민국의 가장들과 식솔들에게 조금의 방어막 없이 직접적이고 사악하게 내려왔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침공을 막아내었던 스키피오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로마의 선각자 카토는 잘 사는 방법을 묻는 농민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면서 부의 가속과 감속의 원리를 설명했다. 잘 사는 방법으로 목축을 하시오. 적당히 사는 법으로 목축을 적당히 하시오. 가난하게 살려면 목축을 엉터리로 하시오. 왜 농사지으라는 말은 안 하십니까?라고 묻는 사람에게 농사는 그저 굶어 죽지는 않을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어느 한 사람이 고리대금업은 어떤가요?라고 묻자 카토는 차라리 그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그는 대답하였다.
오천 년 가난을 떨치고자 달려왔던 대한민국은 드디어 선진국에 진입하여 축포와 샴페인을 터뜨리며 서로를 비난하는 것도 모자라 대한민국이 달려온 과거 반세기까지 해부하고 조각하고 있는 동안 서구의 헤지펀드와 IMF는 팍스 로마나를 있게 한 정신적 스승 카토의 가르침을 충실히 실천하며 한편으로는 목축의 경험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양의 털을 언제 깎아야 될지를 면밀히 가늠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카토가 그렇게는 하지 말라고 경고한 고리대금업에까지 손을 대면서 IMF를 앞세워 대한민국을 생선처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요리를 시작하면서 1997년은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