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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해 록] 백년전쟁 98, 금과 달러 1998

by 윤해

인류는 농업혁명을 통해 잉여농산물을 저장하고 대를 이어 물려주기 위해 화폐경제를 만들었고 이렇게 시작된 화폐의 발달이 바로 인류 문명사와 연결될 정도로 화폐, 즉 돈은 인류 문명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이처럼 글로 밝히는 대낮 같은 문명이 껍데기 문명이라면 달밤처럼 은은하게 비추는 돈을 밝히는 것이 알맹이 문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역사는 밤에 일어나는 것이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만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인류의 역사는 총칼과 창검을 앞세워 잉여생산물, 즉 돈을 뺏어오기 위한 전쟁의 역사요 나라의 흥망성쇠가 오롯이 이 쩐錢의 전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의 싸움으로 결판나며 그 승부의 끝에 나의 행불행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글을 배우며 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행복은 성적순이지 졸업하고 나면 행복은 자산순이다라고 하는 자조 섞인 말이 어쩌면 빈말이 아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쩐錢의 전쟁을 통해 질서가 잡혀가고 그렇게 잡은 질서가 공고히 되어가고 세력을 넓혀가는 과정을 거쳐 최종 승자가 결정되고 그 승자는 패권을 잡고 비로소 기축통화를 발행하면서 패권을 행사하고 패권질서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돈 전錢를 파자해 보면 금 옆에 창을 쌓아놓은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쩐의 전쟁으로 승리한 역사상 모든 패권국가의 힘은 무력에서 나옴을 단번에 짐작할 수가 있다.

1990년대의 세계패권질서는 공산진영이 무너지고 미국이라는 유일한 패권국이 세계를 끌고 가는 형국이 되었고 반세기가 가까운 미소 냉전질서의 체제전쟁은 종언을 고했으며 새로운 패권질서로 세계는 이합집산을 하고 있었다. 자유진영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대한민국이 단숨에 OECD선진국에 올라서 샴페인을 터뜨린 것도, 3저 호황에 힘입어 한 없이 우상향 하여 국부를 늘릴 것이라는 희망에 온 국민들이 신 한국 창조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도, 그때까지 중단 없는 전진으로 달려왔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이 시작된 패권국의 양털깍이에 모두 다 경악을 금치 못했고 이것이 포성 없는 전쟁, 쩐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의 무게를 제대로 아는 국민들은 별로 많지 않았을 것이다.

1998년은 한국에서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 이어지는 해이자, 헌정사상 최초로 보수정당에서 진보 정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해 이기도 했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 해결해야 할 온갖 문제가 쌓였고, 대다수 국민들은 이 한 해를 정권교체보다는 IMF, 외환위기, 실업난, 노숙자라는 네 단어로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회사들이 부도/화의/법정관리 등으로 된서리를 맞게 되었다. 금 모으기 운동도 있었으며 게다가 직장인들의 저승사자와 같은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노사 갈등도 전보다 더 과격해져 집회, 시위만 터지면 시가지는 돌과 화염병, 쇠파이프 천지로 변했다. 1998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빌 게이츠, 손정의 회장을 초청하여 의견을 들은 후 모든 관공서에 인터넷 인프라를 설치하였고 이에 따라 전국 모든 장소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국가를 만들어내었다.

대립 일변도이던 남북관계에선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 해이기도 한데,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전임 대통령들의 대북 강경노선 대신 '햇볕정책'을 천명했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팔순을 넘은 나이에 소떼 1만 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은 뒤 금강산 유람선관광 성사까지 달성해 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북측은 김대중 정부를 냉담하게 여겼다. 이러한 결과 북한은 속초 잠수정 침투사건과 여수 반잠수정 격침사건, '광명성 1호' 발사 파문, 금창리 핵시설 파문 등으로 대한민국을 수시로 자극했다. 6월 15일에는 종합주가지수(현재 코스피지수)도 주가가 300선 마저 붕괴된 288로 마감돼 87년 3월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8년 한때 2000원 가까이 치솟은 원달러 환율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천3백 달러로 집계되어, IMF 사태로 세계 42위 중소득 국가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1998년의 화두는 IMF체제 하에서의 생존이었다. 정경유착 속에서 덩치만 부풀려 온 재벌들도 구조조정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했다.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으로 길거리로 쫓겨난 가장은 물론 신규 취업 시장의 문을 두드려 보지도 못한 청년들까지 무려 2백여만 명이 실직의 아픔을 겪었다.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5.1%에 물가상승률 7.5%, 실업률 7%대에 달했고 은행금리가 25% 가까이 튀어 오른 한국경제는 IMF체제 하에서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으면서 은행들도 망하는 신용경색의 한해를 힘겹게 지나고 있었다.

돈은 돌아야 돈이며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아가는 강력한 속성이 있다. 2차 세계대전말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1944년 서방 44국 지도자들이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즈에 모여 만든 국제통화체제, 브레튼우즈 체제는 미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국제 결제 시스템인 달러화 금태환제의 도입, IMF(국제통화기금) 및 세계은행(IBRD) 창설 등이 핵심 내용이다. 베트남 전쟁에 따른 막대한 전쟁비용을 이유로 미국이 1971년 달러 금 태환제를 포기하면서 사실상 붕괴됐지만 여전히 국제금융의 기본틀로 남아있다. 신 브레튼 우즈체제에서 경제 식민지가 된 대한민국은 반세기를 쌓아온 국부 중에 상당한 부분, 특히 금융과 공공 부분의 인프라를 IMF와 같은 해외자본에 잠식당함으로써 경제주권을 잃어버리고 협상력을 약화시킨 대가로 한국시장은 급격하게 국제 자본시장으로 편입되었다.

포탄이 작열하는 전쟁에서도 이름 모를 병사의 희생으로 전황이 바뀌듯이 쩐의 전쟁이 한창이던 1998년 장롱 속에 깊숙이 숨겨두었던 금붙이를 들고 금 모으기 행사에 장사진을 치고 늘어서 있던 국민들의 모습에서 일제하 망국의 백성들의 국채보상운동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았다. 기업과 은행 그리고 국가의 부실을 개인과 가계가 막아주고 살려내는 기막힌 한반도 백년전쟁의 유사한 패턴은 쩐의 전쟁 IMF 외환위기에서도 유감없이 재현되면서 국민들이 금을 팔아 국가가 필요한 달러를 사는 희한한 장면이 세계인들이 지켜보고 있던 1998년 내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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