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해 록 ] 자동차 핸들로 보는 세상의 좌우

by 윤해

자동차는 뭣하는 물건인고? 현대 문명의 총아 자동차 부심이 뜨겁다. 우리 세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산업혁명이 촉발한 기계 문명으로 타고 이동하는 모빌리티 혁명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고, 이 어른들의 장난감, 자동차는 나와 너의 얼굴을 넘어 또 다른 나의 분신으로 현대의 도시를 도배하고 있다.

도시를 깨우는 자동차의 물결이 없었다면 현대문명은 지루하고 나태한 문명이 되었을 것이다. 자동차를 대하는 남자의 로망은 명품백을 향한 여자의 욕망과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도 뒤돌아 보면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10대 초반 꿈에 마이카를 직접 만들고 몰고 다니는 꿈을 꾸었고, 아마 주변 여건이 성숙되었으면 망치를 두드리고 드라이브를 조이면서 기어에 기름칠하여 나 만의 차를 직접 만드는 도전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재료도 없고 기술도 없으며 무엇보다 하루 20원의 용돈을 받는 국민학생이 차를 만들기는커녕 하루하루 만화 보고 고구마튀김 과자 사 먹기에도 팍팍한 현실에 좌절하면서 그냥 개꿈이니 생각하고 최초의 마이카 제작의 꿈은 개꿈으로 흘려보냈다. 불만스러웠지만 자전거 하나 끌고 다니며 고등학교 시절 집에서 왕복 이백킬로 미터도 넘는 거리의 안동, 경주, 안강의 국도를 그야말로 화물트럭 곁을 헤집고 달리면서 목숨이 몇 개나 되는 사람처럼 싸돌아 다녔다.

이처럼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수렵본능이 모빌리티 기기를 통해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고 싶은 욕망은 그 또래 피 끓는 청춘의 특권이었지만 70년대 대한민국의 공사판 도로에서 덤프트럭, 버스를 제외한 개인용 마이카 시대가 도래하기에는 요원해 보였다.

군 생활을 GP에서 GOP 해안 철책선까지 둘러싸인 동해안 금강산 해금강 자락과 설악산에서 복무하면서 샾밴 트럭이라는 특장차를 타고 최전방을 누비면서 마이카 기분도 내 보았고, 눈이 시리도록 검푸른 동해안의 절경과 설악의 비경에 압도당하면서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돈다라고 하는 미신 하나 믿고 만기전역을 하던 80년대 말 드디어 대한민국에도 마이카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현대는 조랑말 포니를 시작으로 프레스토 소나타 그랜저라고 하는 소형 중형 대형 마이카 라인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대우의 르망 기아의 프라이드 등 전 국민이 마이카를 가질 수 있다는 꿈이 드디어 눈앞의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비록 마이카 시대가 열렸지만 마이카를 장만하기까지 넘어야 할 언덕도 만만치 않았다. 취직은 했지만 그 당시 신입사원 2년 치 연봉을 부어 넣어야 가질 수 있었던 마이카는 여전히 꿈이었지만 행운과 우연 그리고 욕망이 겹치면서 나는 서른이 되던 봄에 내 인생의 첫차, 마이카를 장만하게 되었다.

첫 차는 남자에게 있어서 무엇에도 비교하기 어려운 로망이며 자신에게 강력한 임팩트를 제공한다. 오로지 자신 만의 공간에서 지배적이고 우월적인 위치에 앉아 누군가를 태운다는 느낌은 단순한 이동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춘하추동 사시사철을 가리지 않고 전후좌우 사방팔방으로 달려갈 수 있는 마이카 안에서 남자는 마이카 바깥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노고와 수모를 겪더라도 나의 애마, 마이카의 운전대만 잡으면 알파메일로 급전환하고 마는 신기한 경험 때문에 지금도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은 신차경쟁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자동차는 전후좌우 사방팔방으로 도로를 달린다. 우측통행 좌측통행으로 사람과 차는 반대로 통행하며, 나라마다 역사적 문화적 이유 때문에 핸들이 좌측에 있기도 우측에 있기도 하다. 대체로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영국 일본과 같은 섬나라나 호주와 같은 일부 영연방국가이거나 영국의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미국에 영향을 받은 나라들은 운전석이 왼쪽에 있다.

여러 가지 문화적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차를 대하는 태도가 운전석의 좌우를 결정하는 것 같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과 같은 나라는 차를 내가 모는 마이카라는 생각보다는 마차의 전통대로 마부가 오른손으로 말재찍을 휘두르기 용이한 오른쪽에서 마차를 모는 방식, 즉 기사가 오른쪽에서 운전하던 전통이 자동차 핸들위치에 영향을 주었고, 미국의 문화는 자동차는 나의 사적 공간이며 마이카라는 경향이 강해 운전은 내가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앞자리 좌우에서 왼쪽이 마이카의 주인인 차주가 앉으면서 자연스레 왼쪽에 핸들이 위치한 것은 아닐까? 유추해 본다.

이처럼 자동차 대중화의 산물이자 본고향인 미국이 차를 대하는 태도는 나의 공간, 마이카라는 생각이 지배적 이기 때문에 차주의 자리인 왼쪽에 핸들이 있고 오른쪽은 자연스럽게 조수석이 되었고, 영국과 일본은 자동차에 운전기사를 따로 고용했던 과거 마부의 전통이 이어져 현대에 와서도 오른쪽에 핸들이 위치하게 되었다고 보는 편이 이해하기 편하지 않을까?

자동차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운전석의 위치까지 좌우로 나누듯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 여하에 따라 좌우로 갈라져 치열한 공방을 하며 날을 지새운다. 그러나 좌우로 갈라지는 것은 자동차 하나로 족하지 국가가 웅비하기 위해서는 좌익이라는 왼쪽날개와 우익이라는 오른쪽 날개가 함께 펼쳐져야 날아갈 수 있지 한쪽 날개를 가지고 밤을 새워 고민해 봤자 절대로 날 수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 하나 라도 부여잡는다면 화씨지벽으로 호도되어 가는 공동체, 대한민국도 관세전쟁이라는 벼랑 끝에서도 한줄기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오지 않을까? 행운과 우연에 기대는 인디언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는지 헷갈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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